매일신문

[야고부] 자승자박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도덕 정치'를 내세워 집권에 성공했다. 이는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이 압축해 보여준 워싱턴의 '몰(歿)도덕'에 환멸을 느끼고 있던 미국 국민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것이 구체화된 대표적인 정책이 평화와 인권을 강조한 '인권외교'였다. 하지만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점령을 막지 못한 데서 드러났듯이 비현실적 이상론에 지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공평하지도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과 루마니아에 대한 차별 대우다. 카터는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 독재를 비난하면서 주한 미군 철수를 '협박'했다. 하지만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에게는 달랐다. 1978년 워싱턴을 방문한 차우셰스쿠에게 카터는 "우리(카터와 차우셰스쿠)는 신념과 목표를 공유한다. 정치와 경제의 공정한 체제를 갖고, 개인적 자유를 누리고… 우리는 인권을 향상시켜야…"라고 치켜세웠다.

인권외교는 카터의 자승자박(自繩自縛)이기도 했다. 이를 잘 보여준 것이 1979년 11월 이란의 이슬람 과격파 학생들에 의한 미국 대사관 직원 인질 사건이다. 카터는 이란과 국교를 단절하고 미국 내 이란 자산을 동결하는 조치로 인질 석방을 압박했다. 하지만 이슬람 혁명 지도자 호메이니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남은 해결 방법은 특공대를 투입해 인질을 구출하는 것이었으나 카터는 그럴 수 없었다. 인질의 생명이 위험해지는 것은 물론 무엇보다 취임 당시부터 그런 불법행위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무력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천명해 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인질 사태는 장기화됐고 여론은 악화될 대로 악화됐다. 견디다 못한 카터는 마침내 약속을 깨고 1980년 4월 특공대를 투입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실패하면서 카터의 정치생명은 끝이 났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낙연 총리 후보자의 위장 전입 사실이 드러나면서 병역 면탈'부동산 투기'세금 탈루'위장 전입'논문 표절 등 5대 비리자를 고위 공직에서 배제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도 자승자박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다. 야당이 문 대통령의 공약을 내세워 이 후보자 인준안에 반대할 경우 마땅한 대응 논리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공약을 지킬 수도 어길 수도 없는 진퇴유곡에 놓인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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