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먼 나라 이웃나라를 다시 생각하며

폴란드와 러시아 16세기부터 충돌

애증의 이웃이 아니라 증오의 대상

새 정부 외교관계 정상화 의지 기대

일본과의 관계도 새롭게 정립돼야

국제화의 영향인지 캠퍼스에 외국인 학생들이 자주 보인다. 언젠가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여학생 두 명이 전형적인 슬라브계 외모여서 러시아 학생인가 말을 건네니 폴란드에서 왔단다. 사과를 하자 당신더러 일본인이냐고 묻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해서 함께 웃었던 기억이다.

좀 복잡한 마음이 든 것은 한국과 일본처럼 폴란드와 러시아의 뿌리 깊은 애증의 역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 소련의 우방이었던 동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에 대해 이중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다.

히틀러로부터 해방시켜줬다는 고마움과 함께 무력으로 억압받은 과거에 대한 증오의 감정이 그것이다. 독일과 프랑스 같은 서유럽 강대국들과 동쪽의 제국 러시아가 충돌할 때마다 그 가운데 있던 동유럽 각국은 쑥대밭이 되곤 했다. 그중에서도 인종과 언어가 비슷한 폴란드는 러시아와 특히 견원지간이었다. 두 나라는 폴란드 전성기였던 16세기부터 자주 충돌했다. 당시엔 러시아가 폴란드에 당하는 입장이었지만 이후 서구화 정책으로 강대국으로 급성장한 러시아와 달리 폴란드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18세기 말 폴란드는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에 의해 분할되는데, 그 때문인지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 당시 자발적으로 그를 따른 폴란드 용병만도 엄청난 수였다고 한다. 폴란드가 독립한 것은 이로부터 100년도 더 지난 1차 대전 이후니 그들도 지난한 역사를 지녔다.

20세기에 와서 갈등은 더 심해졌다. 2차 대전 발발 직전 상호 불가침조약을 깨고 폴란드를 먼저 침공한 히틀러와 이를 빌미로 폴란드 동쪽을 차지했던 스탈린에 의해 폴란드는 다시 둘로 쪼개졌다. 수세기에 걸친 양국의 갈등 중에서도 이 시기 카틴 숲에서 행해진 대량 학살은 가장 끔찍한 사건 중 하나다.

스탈린의 명령으로 수만 명의 폴란드 장교와 학자 등 지도층들이 숲 속에서 몰살을 당했다. 소련이 전승국이었던 관계로 히틀러의 소행으로 은근슬쩍 떠넘겨졌다가 영원히 역사에 묻힐 뻔했던 이 사건의 전모는 1980년대 말 모두 밝혀졌다. 이 사건은 몇 년 전 기념식을 하러 이곳에 가던 폴란드 대통령이 탄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또 다른 비극을 낳았다. 그러니 폴란드인들에게 러시아란 그냥 애증의 이웃이 아니라 증오의 대상이라 해도 과언은 아닌 것이다. 2000년대 초반 두 달 동안 동유럽을 여행하면서 당시엔 여전히 널리 통용되던 러시아어로 말을 건네면 유독 날카로운 반응이 돌아오던 곳이 바로 폴란드였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상처를 많이 주는 것처럼, 국가 간에도 이처럼 가까운 이웃이 원수가 되는 경우가 많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와 일본은 수천 년 동안 잘 지낸 적이 별로 없다. 특히 일제 강제 병합과 광복 이후로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는 21세기까지 두 나라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근간에 있었던 한일 위안부 합의 이행을 두고도 두 나라는 이견을 보인다. 최근에는 유엔 총장까지 나서서 한일 위안부 합의 지지 발언을 하고, 오랫동안 한국에서 근무했던 전 주한 일본대사가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좋았다'라는 제목의 혐한 서적까지 발간했다. 일본 측에서는 두 나라의 발전적 미래 관계에 제동을 거는 것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 사과를 요구하는 우리나라라고 우긴다. 당연한 말이지만 진정한 사과는 그것을 하는 측이 아니라 사과를 받는 사람이 충분하다고 말할 때 이뤄진다. 용서는 얼마간의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국가 간의 역사적 과오를 용서할 권리가 특정 정권에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반가운 것 중 하나가 외교관계 정상화와 개선을 위한 노력 의지이다. 출범 즉시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등 주요 4개국에 특사를 파견하여 한반도 안보를 비롯한 다양한 현안 해결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최근 첨예화된 일본과의 갈등에서 볼 수 있듯, 제대로 된 과거의 청산 없이 발전적 미래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우리 이웃들과의 관계가 새롭게 정립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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