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올해 하반기에 공무원 1만2천 명을 더 뽑는다고 발표하자 '공시생'(공무원시험 준비생)들이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추가 선발로 합격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도 많은 '공시생'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다시 가슴이 답답해진다.
지난 4월 치러진 국가공무원 9급 공채 시험에는 모두 22만8천368명이 접수해 46.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앞선 지난해에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자(60만 명)보다 많은 70만 명이 합격률 1.8%에 불과한 공무원시험에 도전했다.
첫 월급으로 각종 수당 포함 200만원(국가직 9급 공무원)도 받지 못하는 자리에 이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목을 매는 이유는 뭘까?
YBM 한국토익위원회가 이달 자사 블로그에서 대학생과 직장인 6천4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9.8%(복수응답)가 공무원시험 응시 이유로 '정년보장'을 꼽았다. 또 앞선 지난 3월 대학내일 20대연구소가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 청년유니온과 함께 진행한 '2017 진입 경로별 공시 준비 청년층 및 특성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공시생의 68.9%가 공무원시험이 사기업 채용에 비해 평가기준이 명확하고 과정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우리 젊은이들은 행복한 삶과 결혼 그리고 출산의 전제조건인 안정적인 직장을 공정한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공무원시험을 선택한 것이다. 거꾸로 얘기하면 우리 사회가 청년들에게 안정적이고 진입 과정이 투명한 직장을 충분하게 제공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의미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에서 10개월째 경찰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김상우(가명·28) 씨는 "아버지는 81학번이신데 지역에서 대학을 졸업하셨지만 그때는 오라는 곳이 많아 직장을 선택할 수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저는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국내 대기업에서 인턴으로 근무한 경험도 있지만 서류전형에서 50번째 떨어지던 날 미련 없이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고 아버지도 앞으로 2년 동안은 도와주기로 하셨다"고 말했다.
특히 지역의 취업준비생들은 더욱 공무원시험으로 눈이 갈 수밖에 없다. 주요 대기업 채용 담당자들은 지방대에 대한 차별이 없다고 얘기하는데 주변에서 대기업에 입사한 친구들은 대부분 서울에서 학교를 나온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고향에서 대학 졸업 후 대기업 비정규직으로 4년 동안 일하다 이달부터 소방직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이주영(32) 씨는 '재계약 또는 정규직 전환 약속시점이 다가오면 평소 함께 즐겁게 일하던 동료들이 갑자기 나를 데면데면 대하는 것을 경험하고 인간적 모멸감에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며 "새 정부의 공무원 정원 확대 방침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당분간은 공부만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편, 사회 일각에서는 정부의 공무원 증원 방침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공무원은 산업현장에서 우리나라의 성장잠재력을 향상시키거나 벤처기업 창업 등으로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공무원 증원으로 대표되는 현 정부의 청년실업 해결책이 자칫 언 발에 오줌 누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노량진 생활을 청산하고 싶은 공시생들에게는 한국 경제구조의 미래까지 고민할 여력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 후보 TV 토론회에서 '일자리는 근본적으로 기업이 만드는 것으로 기업의 사기를 살려주는 것이 급선무'라는 보수진영 후보의 주장에 "지금까지 9년 동안 이명박'박근혜정부가 그런 정책을 펼쳤고 현재의 청년실업 사태가 그 결과"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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