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으로 가지게 된 차는 10년이 더 된 낡은 엑셀 승용차였다. '차를 장만했다'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것은 서울에서 대학을 마치고 대구로 와서 결혼하기 전까지 누나 집에 얹혀살 때 자형이 타던 차를 물려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자형도 그 차를 둘째 형님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는데, 그 형님은 지금 헌법재판관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런 인연 때문에 나는 내 첫 차의 원래 주인이 헌법재판관 지명을 받고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를 할 때의 모습을 아주 꼼꼼히 지켜보았었다.
언론에 의해 요약된 형태가 아닌 전체 청문회를 보면서 느낀 점은 우리나라의 인사청문회는 상당히 비정상적이었다는 것인데, 문제는 비정상이 지금까지 조금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야당 의원들은 청문회의 목표를 낙마에 두기라도 하는 듯 부모, 자식에 사돈까지 털어서 어떻게든 흠집을 내려고 범인 취조하듯이 몰아붙인다. 본질과는 상관없는 내용, 재판 중이거나 정치적으로 예민한 문제여서 말하기 어려운 내용에 대해 아주 얍삽하게 질문하기도 했다. 그것에 대해 답변을 하지 않으면 소신이 없다고 자기들 멋대로 이야기를 했다. 결정적인 문제는 자기들은 후보자의 인격 모독에 가까운 말도 스스럼없이 장황하게 이야기를 하고는 정작 답변은 제대로 듣지를 않는다는 점이다.
인사청문회의 '청문'(聽聞)은 말 그대로 '들어보고 들어보는 것'이다. 인사청문회는 후보자가 자신의 철학과 비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의원들이 국민이 후보자에 대해 궁금해할 부분에 대해서 물어보고, 다시 후보자의 이야기를 듣는 형식이기 때문에 '물을 문(問)' 자를 써서 '청문(廳問)회'라고 하는 것이 적절할 듯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같은 말을 반복해서 '청문'(聽聞)이라고 한 것은 묻기보다 듣기를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후보자가 공직에 적합한 인물인지는 부하 직원들의 평가나 사회적 평판을 조사해 보면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다. 평판은 좋지 않은데 실세와의 친분으로 후보자가 된 사람은 말하는 것을 들어 보면 금세 바닥이 보인다. 평판이 좋은 후보자의 경우 국민들은 후보자의 삶과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학식, 조직을 운영하기 위한 비전에 대해서 듣고 싶다. 그렇지만 이런 것은 지금 청문회에서는 듣기가 어렵다. 들어야 할 내용을 제대로 들을 수 없는 이유는 그런 내용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좋은 질문이 없기 때문이다. 청문회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잘 들어야 하고, 들을 만한 내용을 이끌어낼 수 있는 좋은 질문이 있어야 한다. 인사청문회는 국회의원의 장황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마련한 자리도 아니며 공직 후보자를 범죄인처럼 '심문'(審問)하는 자리도 아니다. '청문'이라는 말 그 자체에 충실하기만 해도 우리 정치는 지금보다 분명히 더 나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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