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시간이 흐르면 해결된다

"어휴 저놈의 닭 우는 소리."

평소 새벽 시간에 잠자리에 드는 아내가 무심결에 내뱉은 말이 크게 들린다. 잠에서 깨어 일어나 시계를 보니 오전 2시 50분이다. 닭 우는 소리는 아내가 잠을 자는 시간에 맞춰 시작된다. 사는 아파트가 도심에서 벗어난 개발제한구역 가장자리에 있다가 보니 짐승이 짖거나 새가 우는 소리를 흔히 들을 수 있다.

드레스룸을 사이에 둔 남북 방향의 방 두 칸을 수시로 옮기며 침실로 사용하는데, 닭을 몇 마리 키우는 농가 쪽으로 침실을 옮긴 뒤 생긴 골칫거리가 닭 우는 소리다. 해가 빨리 뜨는 여름철이라 그런지 닭들도 빨리 깨어나는 듯하다. 어쩌면 도심의 불빛과 소음에 닭들이 혼란을 겪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침실을 옮기기 전에는 개 짖는 소리 때문에 곤란을 겪었다. 도심 쪽 상가 건물에 인접한 방에서 잠을 잤는데, 덩치가 큰 시베리안 허스키가 밤이 깊어지면 울부짖었다. 주인이 좁은 상가 복도에 매달아 놓고 퇴근하면서 빚어진 일이다. 울부짖는 소리가 시끄럽기도 했지만 개가 불쌍히 여겨졌다. 소리에 놀라 잠을 설칠 때마다 주인을 찾아 얘기하든지 경찰서에 신고해야겠다고 다짐했으나 행동으로 옮긴 적은 없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개 짖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수백 가구가 사는 아파트이기에 똑같은 불편을 당한 주민 누군가가 민원을 해결한 것으로 보였다. 그냥 잘됐다고 생각하며 그 일을 잊어버렸다. 지금의 닭 우는 소리도 아마 조만간 해결되지 않을까. 새벽 시간에 잠을 설치는 불편이 계속되더라도 이를 해결하려고 나서고 싶은 마음은 없다. 별난 행동을 하지 않으려는 성격도 영향이 있지만 이미 개 짖는 소리를 통해 학습이 되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시간이 흐르면 해결된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흐르는 시간에 순응하며 살아가는가. 시간을 이겨내려고 발버둥치며 사는 사람들이 더 많다. 우리의 삶은 짧은 즐거움에 이은 고통의 연속이다. 그냥 지나가는 시간에 어느 정도 순응하며 살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 앵하고 울음소리를 터뜨리며 태어나고 나서 행복한 순간은 얼마가 될까. 아마도 행복한 시간보다는 힘들고 불편한 시간이 더 많을 것이다. 돈이 세상 전부가 되다시피 한 우리나라 국민의 행복지수는 전 세계적으로 매우 낮은 편이다. 그만큼 일상생활의 매 순간이 불편과 고통에 노출되어 있다.

며칠 전 마른하늘에 날벼락 치는 일을 겪었다. 저녁까지 일 잘하고 퇴근한 후배 기자가 다음 날 새벽 교통사고로 숨진 것이다. 자정을 좀 지나 난 단독사고로 후배는 사랑하는 가족에게 말 한마디 남기지 않은 채 현장에서 숨을 거뒀다. 졸음운전이었거나 교통 환경에 따른 착시 사고로 경찰에 의해 조사됐다. 사람을 만나는 데 시간 제약을 두지 않는 언론사 생활이기에 밤늦게 운전한 상황이 서글펐다. 사고 전날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는데, 후배가 선약이 있다며 다른 장소로 갔기에 안타까움은 더 컸다.

후배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수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와 병으로 먼저 세상을 뜬 회사 선배의 얼굴이 주마등같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후배도 앞서 세상을 등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금세 다시 잊힐 것이고, 어느 날 다시 아픔으로 돌아올 것 같다.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데는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죽고 나면 그만인데. 잘 알면서도 눈앞의 욕심에 절어 돈과 권력, 명예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 묻고 싶다. 그렇다면 현명한 삶은? 그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 잘 사는 것일까.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맞닥뜨리는 괴로움을 이겨내는 지혜와 여유가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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