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봉산문화회관 대한민국연극제 '그냥 갈 수 없잖아' 공연 현장. 앞좌석에 앉은 한 여성이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다. 제2회 대한민국연극제 경북연극 홍보대사 뮤지컬배우 이태원(52) 씨였다. "경북 연극, 특히 김천연극이 이렇게 저를 눈물짓게 할 줄은 몰랐어요. 제가 이제까지 봤던 어떤 연극보다 훌륭했고 제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팬 사인회 후 만난 이태원 씨는 이렇게 감상을 늘어놓았다.
이날 김천예술공동체 삼산이수가 올린 '그냥 갈 수 없잖아'는 미국에 입양됐던 한 청년이 생모를 찾아 추풍령의 한 주막에 왔다가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저 흔한 산파극류(類) 연극이 눈물샘을 자극한 이유가 궁금했다.
"김천은 저희 연안 이씨 종손이었던 할아버지가 살고 계셨던 곳이에요. 어릴 적 저는 꼬불꼬불 추풍령을 넘어 할아버지 집에 놀러 왔고 직지사를 앞마당 삼아 뛰어놀았지요. 연극에서 익숙한 지명, 귀에 익은 사투리가 들리면서 순간 몰입이 됐습니다."
이 씨의 감정선을 자극한 사연은 또 있었다. 극 중 입양 청년의 스토리였다. 이 씨도 중2 때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이민 1, 2세대들이 그렇듯 이 씨 가정도 초창기에 힘든 시절을 보냈다. 잡화점, 세탁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에 다녔고 레슨비를 벌기 위해 봉제공장에서 일을 했다. 어느 날 교회 독지가의 도움(레슨)을 받아 기적처럼 줄리아드음대에 입학했고 미 브로드웨이에서 주연으로 활약했다. 1997년엔 '명성황후'에 캐스팅되면서 꿈에 그리던 한국 무대로 금의환향할 수 있었다. 연극 속 입양청년의 귀향 사연이 자신의 성장 스토리에 투영되며 눈물을 자아냈던 것이다.
이 씨와 대구와의 인연도 꽤 질기다. 서울을 빼놓고 가장 많이 왕래하는 도시이고 이젠 대구 지리도 어느 정도 익숙할 정도다. '명성황후' '맘마미아'로 한참 이름을 날릴 때 대구경북에 수도 없이 무대에 섰다. 제1회 딤프 때 '뮤지컬스타상'을 받은 후 딤프 무대에 거의 고정으로 출연했고 여러 차례 레드카펫도 밟았다. 각계의 친구도 많다. 정철원 한울림대표, 김종성 대구연극협회장과는 말띠(1966년) 동갑내기로 가끔씩 술 한잔 나누는 사이다.
이태원 씨가 뮤지컬 '명성황후'에 출연하게 된 사연도 특이하다. 줄리아드 음대와 존스홉킨스대 피바디대학원을 졸업한 이 씨는 미 브로드웨이 뮤지컬 '왕과 나'에 주연(왕비)으로 캐스팅됐다. 애나폴리스 오페라경연대회 최우수상(1995년)을 받을 정도로 인기를 끌던 중 '명성황후'가 미국 공연에 나섰다는 소식을 듣고 그 길로 윤호진 대표를 찾아가 '셀프 캐스팅'을 성사시켰다. 당시 이 작품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동양 최초로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12회 전회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태원 씨는 김천 연극계에서 불러주면 꼭 같이 작품을 하겠다고 말했다. 카메오 말고, 정식 출연자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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