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의 꽃/김옥숙 지음/새움 펴냄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끔찍한 부상을 입고 살아남은 조선인과 그 후손의 삶에 관한 소설이다. 원폭 투하로 일본은 항복했고, 조선은 해방됐다. 이 작품은 해방의 기쁨에 들떠 우리가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히로시마 원폭 피해를 입은 조선인은 7만 명이었다.(폭탄 투하 때 사망자는 2만5천 명) 72년이 흘렀지만 원폭으로 인한 고통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 소설은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는 경남 합천과 일본 히로시마를 오가며, 원폭 피해자 3대의 삶을 추적한다.
◆나의 합천과 아버지의 히로시마
지은이 김옥숙은 "내 고향은 경상남도 합천이다. 히로시마와 아무런 연관이 없을 것 같은 합천이 어째서 '한국의 히로시마'라고 불리는지 몰랐다. 할아버지가 일본에 사셨다는 이야기, 아버지가 태어나신 곳이 히로시마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어렸고, 그저 아버지가 태어난 곳이 일본이라는 사실에 신기해했을 뿐이다"고 말한다.
그는 "3년 전 고향의 빈집에 들렀다가 쓰레기 더미에서 아버지의 호적초본을 발견하고 멍해졌다. 누런 호적초본에 아버지의 본적이 히로시마라고 적혀 있었다. 막연하고 추상적이었던 히로시마가 내 앞에 새롭게 나타난 것이다. 그 순간부터 히로시마라는 단어가 내게서 떠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경남 합천이 '한국의 히로시마'라고 불리는 이유는 조선인 원폭 피해자의 7만 명 중 절반 이상이 합천 출신이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그토록 많은 합천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머나먼 일본 땅으로 가서 살게 되었을까? 한국의 히로시마라는 이름을 얻을 정도로 합천 사람들이 원폭 피해를 많이 당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리고 지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왔을까? 그 의문으로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고 밝힌다.
◆합천의 황강과 히로시마의 검은 강
지은이 김옥숙이 처음 생각했던 이 소설의 제목은 '검은 강'이었다. 원폭으로 모든 것이 불타버렸고, 그 재로 히로시마의 강은 검게 물들었다. 하필 강을 제목으로 정했던 것은 지은이의 고향 합천 '황강' 때문이다.
"황강은 어린 시절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의 유토피아였어요, 숨이 차도록 뛰어놀았던 하얀 모래밭, 파드득 몸을 떨며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던 피라미, 은빛 지느러미를 반짝이며 헤엄치던 은어떼, 푸르고 긴 수양버들 가지가 사방으로 흩뿌리던 향기로운 바람, 아이들의 벅찬 함성, 강물을 달게 마시던 어미 소와 송아지…. 목이 멜 정도로 그립고 그리운 강, 황강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입니다.
내 할아버지에게도 황강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이었을 것입니다. 그처럼 아름다운 고향의 강을 뒤로하고, 할아버지는 머나먼 히로시마로 떠나야 했습니다. 그렇게 히로시마로 간 우리의 할아버지들은 무참한 노동에 시달렸습니다. 고달픈 나날들 속에서 그들은 황강이 흐르는 고향으로 돌아올 날을 꿈꾸었겠지요. 하지만 그들이 마주한 강은 황강이 아니라 검은 재를 품고 흐르는 히로시마의 '검은 강'이었습니다."
◆사람과 함께 합천이 주인공인 소설
'흉터의 꽃'은 원폭 피해를 입은 일가족 삼대의 이야기다. 합천의 농민 강순구 일가족이 히로시마에서 원폭 피해를 입고, 고국으로 돌아와서도 가난과 원폭 피해 후유증으로 끔찍한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다. 피폭 1세대뿐만 아니라 2세대, 3세대까지 피폭 후유증이 대물림되는 과정을 통해 끝나지 않은 폭력을 보여준다.
사람뿐만 아니라 이 소설에서는 합천이라는 장소가 특별히 강조된다. 지은이는 "이 소설에서 합천이라는 장소는 일반적인 작품의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원폭 피해자가 합천에 가장 많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주인공들이 꿈꾸었던 삶, 최종적으로 도착하고 싶었던 세상이 '황강이 흐르는 합천'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황강이 흐르는 합천'은 그들이 궁극적으로 가 닿기를 소원하는 세계다.
작품에서 합천 혹은 황강은 히로시마 혹은 검은 강과 대조를 이룬다. 히로시마와 검은 강이 상처, 파괴를 상징한다면 합천과 황강은 사랑과 회복을 은유한다.
"원폭 피해자들은 상처입고 병든 몸으로 고향 합천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합천에서 살아가며 상처를 딛고 일어섭니다. 원폭의 끔찍한 흉터를 지울 수는 없지만 그들은 결코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흉터 위에 끝내 아름다운 꽃을 피웁니다."
◆세계 두 번째 피폭국인데 무관심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인류사를 바꾸고 우리 민족의 운명도 바꾸어 놓았다. 우리나라 사람들 다수에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일본 패전과 조국 해방의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원폭을 고마운 무엇으로 여기기도 한다. 해방을 가져다주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지은이는 "역사교과서는 원폭 피해자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았다. 교과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도 원폭 피해자들을 외면했다. 한국은 일본에 이어 피폭자가 두 번째로 많은 나라이면서도 원폭 피해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세계적으로도 원폭 피해라면 오롯이 일본을 떠올릴 뿐이다. 그래서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의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밀봉해버린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밀봉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까지 결박하는 행위다"고 지적한다.
지은이는 "북한의 잇따른 핵실험으로 한반도에 핵전쟁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지진 단층대에 위치한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성 문제 또한 심각하지만 이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핵이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놀라우리만큼 무심하다"고 말한다. 이 소설은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이 입었던 또 하나의 상처에 관한 이야기다. 아프고, 불편한 상처를 들춰내는 것은 그런 '미래'를 답습하지 않기 위함이다. 480쪽, 1만4천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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