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 <28>-엄창석

계승은 대구에 온 뒤로 서요를 몇 차례 본 적이 있었다. 동문 앞에 있는 비어홀에서, 계산성당에서 그를 보았다. 그러나 광문사에는 한 번도 찾아온 적이 없었다.

그때 개포에서 아버지를 흉내 내면서도 무언가 자신을 주장하던 어린 서요의 기질은 14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졌다. 아버지와 아들이 유사하면서도 미묘한 차이를 띠었다. 아버지는 어린 서요에게 일어를 배우게 했고 서요는 일어가 능숙해지자 불과 열여덟 살에 소규모 일어학당을 만들었다. 눈을 넓히라고 동경으로 견학을 보내자 사뭇 제국주의자가 돼 돌아왔다. 서요는 박중양과 더불어 대구에서 가장 일어에 능통했다. 박중양은 일어를 출세에 이용했지만 서요는 그것으로 자아(自我)를 형성한 것 같았다.

사람들은 두 부자 사이에 벌어진 격한 다툼을 알고 있었다. 서요는 이사청 관료들과 경찰, 거류민회 간부들을 자기 집으로 초청하곤 했다. 한 해 전, 제일은행 두취(頭取, 은행장)인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대구를 방문했을 때 서요는 동료들을 끌어모아 성대한 환영식에 참여했다. 시부사와는 1902년에 서울과 동래에서 발행한 일본 제일은행권 지폐에 초상화로 그려진 인물이었다. 넓은 이마에 코가 크고 인중이 긴, 프록코트 차림의 초상화. 일본은 '시부사와 지폐'를 사용하라며 인천항에 군함 수 척을 모아 한국 정부를 굴복시켰다. '시부사와 지폐'는 한국이라는 물고기가 일본 경제의 그물망 속으로 들어가는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대구에서 시부사와가 성대한 환영을 받고 돌아간 뒤, 두 부자는 크게 맞붙었다.

"왜 그자를 대접하느냐! 우리 금융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놈이 시부사와이다."

"아버지께서는 자주 돈은 몸의 핏줄처럼 흘러야 한다고 하셨지요. 몸이 시들어 가는데 어찌 앉아서 죽기를 기다립니까?"

"시부사와 얼굴이 담긴 지폐는 핏줄에 탄 독약이다."

"아버지, 왜 나쁘게만 보십니까? 조금 인정하면 문둥이처럼 썩은 나라를 살릴 수 있는데요."

"문둥이라니, 이놈아!"

서석림이 고령 개포에 드나들면서 수집한 가야의 기마 토기를 아들에게 집어 던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서요는 아버지의 영세명을 붙인 아우구스띠노 종탑(두 개의 종탑 가운데 다른 하나는 정규옥 부인의 영세명인 젤마나이다.)이 하늘 높이 치솟은 계산성당을 다녔다. 굳건한 신자인 서석림도 성당에 출석했으므로 부자는 일주일마다 만났다. 지난해 사순절 때였다. 두 사람은 재의 수요일에 미사성제에 참례했다. 성당 앞자리에서 서석림과 서요는 어깨가 닿도록 나란히 섰다. 프랑스인 로베르 신부는 보리수 나뭇가지를 태운 재를 손가락에 묻혀 서석림과 서요의 이마에 작은 십자(十字)를 그었다. 신부는 어눌해서 오히려 강조하듯 들리는 한국어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십시오."

서석림은 눈물을 흘렸고 서요는 눈썹에 이슬이 맺혔다.

사문진을 떠난 배는 두 시간쯤 뒤에 개포에 도착했다. 나루는 황량했다. 한때 객주만 사십여 채가 문을 열었을 만큼 번성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강가에는 상선 서너 척이 죽은 개구리처럼 매달려 있었고, 객주 기와집은 곳곳에 폭설로 내려앉아 있었다. 사문진보다 한층 을씨년스러웠다. 배를 선착장에 댄 후, 일행은 겨우 뚫린 눈길을 걸어서 문 열린 객주에 들어가, 메밀국수를 먹었다.

개포에서 낯선 사람 한 명을 배에 태우고 곧장 구포로 향했다. 돛을 올린 배는 빠르게 수면을 핥으며 내려갔다. 서석림이 왜 여행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낙동강 나루를 직접 눈으로 보려고 한 게 아닌지. 그런 거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성수기가 아니긴 해도, 철도가 생긴 지 겨우 두해 만에 낙동강 무역은 처참해졌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물산들은 빠르게 철도로 이동하여, 미리 넓힌 시장길을 따라 각처로 옮겨지는 것이다.

고령을 지나자 강줄기는 뱀처럼 휘어졌다. 산악 지대의 협곡으로 빠져 들어갔다. 깎아지른 양쪽 산기슭에서 눈 더미가 퍽퍽 떨어지며 허연 거품이 수면 위로 솟구쳤다. 그 진동으로 비탈에 선 침엽수들이 쌓인 눈을 털어서 그림자가 짙은 나무숲 사이로 하얀 입자가 번지고 있었다. 정오의 태양이 작열했다. 잔잔한 물결에서 햇살이 튀어 올랐다. 가까이에 있는 수면은 푸른빛이 났고 먼 곳은 은빛이었다. 이윽고 협곡이 낮아지며 강이 트이자, 전방에서 새떼들이 곡선을 그리며 비상했다. 가창오리인가, 흑부리오리인가. 마치 허공에서 커다란 부채가 수면을 쓰는 듯했다. 작고 검은 새떼와 교차하여 두루미와 백조 떼가 강 한가운데의 섬으로 날개를 펴며 우아하게 내려앉았다.

조금 전부터 서석림이 구포 사람과 장죽을 피우면서 얘기를 주고받았다. 지금도 상선을 타고 장사를 한다는 구포 사람은 쉰 살쯤 보였는데 서석림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깎듯이 예대를 했고 서석림은 간간히 하대하며 남쪽 사정을 묻곤 했다.

"동래 상인들에게 구포에서 만나자고 편지를 보냈네."

"예, 동래에서도 국채에 대해 말이 많습니다. 그 때문에 통감부가 나라를 휘저어도 막을 방도가 없지 않습니까. 해관세나 철도노선, 황무지 개간권 등 죄다 국가 채무와 연결돼 있습니다. 어떤 이는 국채를 빌린 자들이 갚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들은 쓸 궁리나 하지요."

"만약 백성들이 돈을 갚겠다고 나서면 정부가 무슨 염치로 돈을 계속 빌리겠는가?"

"백성들이 모두 가난한데 주머니를 열라하면 누가 듣겠습니까?"

"그렇지......"

서석림은 강물로 무심히 고개를 돌렸다. 어느덧 해가 설핏하고, 멀리 또 다른 나루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마 창녕 주물연나루일 것이다. 계승은 주물연나루까지 가 본 적은 없었다. 처음에 하루 묵기로 했던 밀양 삼량나루를 앞두고서였다. "해가 짧군. 여기서 자고 내일 구포로 가세." 서석림이 사공 황씨에게 일렀다. 배가 선착장으로 조심스럽게 몸을 틀 때 구포 사람이 서석림에게 물었다.

"참, 시찰 어른께서 오래 전에 일본이 철도를 비밀리에 측량하는 걸 보시고 낙동강을 떠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저 앞 삼량진에서 말입니다."

서석림이 그 말이 맞다는 듯이 천천히 구포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 비밀 측량이 1892년에 있었다고 요즘 들었습니다. 그 뒤로 10년이 지나서 철도공사를 시작했지요. 게다가 시찰 어른께선 철도가 생기면 낙동강이 쇠할 거라는 예측을 어떻게 하셨는지요?"

"장사꾼이니까 가능하네. 돈이 내 귀에 그런 말을 속삭여주었지."

서석림은 불씨가 사그라지는 장죽을 갑판에 탁탁 털며 말했다. 계승은 깜짝 놀랐다. 1892년이면 자신이 열한 살 때였고, 개포에서 아버지를 따라 나온 어린 서요를 보았던 해였다. 서석림이 가장 크게 낙동강 무역을 하던 시기가 아닌가. 그런 때에 일본 측량단을 보고 무역을 접었다니! 계승은 그의 비범한 상상력에 혀를 내둘렀다. 실제로 서석림이 낙동강을 벗어난 것은 이듬해인 1893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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