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중권의 새論 새評] 인사청문회 단상

서울대(미학과 학사·석사) 졸업.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전 중앙대 겸임교수
서울대(미학과 학사·석사) 졸업.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전 중앙대 겸임교수

새 정부 인사 5대 원칙 평가할 만해

청와대 추천 인물 줄줄이 문제 발견

원칙 유지하되 현실 상황 반영해야

여야가 공통 기준 마련하면 어떨까

어떻게 하나의 머리로 상반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새 정권이 들어서 인사청문회가 열릴 때마다 의원들의 정신건강이 우려된다. 과거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던 이들도 여당이 되면 기준을 낮추려 들고, 과거에 느슨한 기준을 적용하던 이들도 야당이 되면 갑자기 성인도 통과하기 힘들 정도로 기준을 드높이려 든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문재인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인사 5대 원칙을 발표했다. 위장 전입'병역 면탈'부동산 투기'논문 표절'세금 탈루에 걸리는 인물은 공직에서 배제하겠다는 것이다. 새 정부가 스스로 인사에 드높은 기준을 제시한 것은 평가할 만한 일이다. 문제는 이 다섯 가지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인물을 찾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이번에 청와대에서 추천한 인물들은 해당 분야에서 전문적 능력을 지니고 있고 비교적 깨끗한 삶을 살아온 이들이다. 하지만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인사청문회에서 털어보니 다들 완전히 청정하지는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다 보니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기준이 비현실적으로 높게 설정됐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인사 배제의 원칙을 포기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고, 그렇다고 원칙을 철저히 지키자니 사람을 찾을 수가 없다. 원칙과 현실의 충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해결의 첫걸음은 원칙과 현실의 사이를 중재할 타협안을 찾는 데 있다. 다시 말하면 원칙은 유지하되, 운용에서는 일정 기간 유연성을 허용하는 것이다.

청와대에서는 5대 원칙의 현실적 운용을 위한 세부적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거기에는 몇 가지 방안이 있을 것이다. 가령 (1)위반의 사유에 따라 사안을 질적으로 구별하거나 (2)제도의 완비 시점을 기준으로 사안을 시간적으로 구별하는 식으로 인사 배제 5대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운용은 현실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같은 '주민등록법' 위반이라 해도 투기나 학군을 위한 위장 전입과,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한 주소지 이전은 같은 것이 아니다. 표절도 남의 논문을 통째로 훔친 것과 인용을 적절히 하지 않은 것은 경우가 다르다. 또 '다운 계약서'만 해도 불법이 아닌 관행이었던 2006년 이전과, 법 제도의 정비로 불법이 된 2006년 이후가 같을 수가 없다.

이 차이들을 무시하고 모든 경우를 싸잡아 용서 못 할 범죄로 간주할 경우, 결과적으로는 정말 파렴치한 이유에서 위장 전입을 하고 다운 계약서를 작성한 나쁜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게 된다. 이 경우 정말 공직에서 배제되어야 할 이들이 그것을 빌미 삼아 "우리는 그저 남들도 다하는 일을 했을 뿐"이라고 변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기준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은 '국민의 여론'이다. 인사청문회에서 있는 흠, 없는 흠을 다 잡아내는 것은 야당의 당연한 임무다. 검증은 되도록 철저히 하는 것이 공적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당 의원들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한다고 문자 폭탄을 보내는 일부 네티즌들의 극성은 비판받아야 한다.

하지만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국민들에게 해당 후보자가 공직에 적합한지 판단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까지다. 후보자들의 온갖 흠집을 찾아냈으나 만약 국민들이 그 흠결들이 공직 수행에 문제 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하다면, 당리당략을 떠나 국민의 뜻에 따른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호기 있게 인사 배제 5대 원칙을 발표했다가 자신들이 추천한 후보들에게 줄줄이 문제가 발견되자 기준을 낮추려 드는 것은 분명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인사 배제 5대 원칙을 제시한 것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문제가 있다면, 먼 훗날에나 실현될 수 있을 '미래의 목표'를 급하게 당장 적용할 '현재의 기준'으로 제시한 성급함에 있다.

지금의 여당도 언젠가 야당이 될 수 있고, 지금의 야당도 언젠가 여당이 될 수 있다. 그때를 생각해 이번 기회에 여야가 함께 현실적 인사의 원칙을 세웠으면 한다. 여야의 차이를 넘어 모두가 합의하는 공통의 기준을 만든다면, 청문회 때마다 반복되는 여야의 말 바꾸기 행태도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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