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주말부부로 지내는 남편과 말다툼을 했다. 우리 부부가 다툴 때면 9살 난 외동아들 녀석은 고개를 돌리고 아주 모른 척이다. 그리고 다툼이 끝나면 태연스레 말을 건다. 남편을 보내고 녀석이 좋아하는 미역국으로 상을 차려 후식까지 넉넉하게 챙겨 먹은 후 한결 풀어진 기분으로 물었다.
"너는 엄마한테 제일 바라는 게 뭐야?"
"엄마가 죽지 않고 오래오래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
기분이 이상해서 얼굴을 쳐다보니 나를 말끄러미 쳐다보는 두 개의 눈동자에 나에 대한 위로와 내색할 수 없는 외로움이 숨어 있다.
순간 나는 어린 시절의 나로 되돌아갔다. 엄마는 처녀 적 매일신문의 기자였단다. 명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부푼 기대로 시작한 직장생활이지만 집안의 강요로, 대학원 공부를 시켜준다는 꼬드김에 넘어가 25살에 7남매의 맏이에게 시집을 갔더란다. 코찔찔이 시동생까지 있는 과수원에 대학원이 웬 말인가. 직장도 그만두고 시댁에 들어가 살다 정말로 농약이라도 마실 것 같아 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그곳을 나와 연년생의 3남매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팍팍하고 고단한 생활 속에 인생의 절반이 흘러가 버렸다.
그때의 엄마는 얼마나 외로워 보였던가. 맏며느리로 이런저런 집안 대소사를 챙기노라면 생활비는 언제나 바닥이었고 주말마다 오는 남편과는 싸움의 연속이었다. 나도 내 아들 녀석처럼 위태로워 보이는 엄마에게 내색하지 못했다.
어느 날 엄마가 나를 보고 물었다. '생일에 맛있는 걸 해주마. 뭘 해줄까?' 나는 동탯국이라고 대답했다. 엄마는 뭔가 할 말 많은 표정으로 나를 가만히 쳐다보다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때 동태는 어물전에서 제일 싼 생선이어서 엄마는 날마다 동탯국을 끓였더랬다. 그런데 아들 녀석은 미역국을 가장 좋아한단다. 별다른 재료가 필요 없고 하기 쉬워 어릴 때부터 미역국, 카레만 줄기차게 했는데 하필 그게 제일 좋단다.
층층시하 시집살이와 팍팍한 살림살이에 지친 엄마를 바라보던 나의 눈동자에서, 정신없이 바쁜 생활에 지친 나를 쳐다보는 아들의 눈에서 엄마를 향한 배려와 사랑의 모습으로 발견한다.
또한, 이제야 나를 말없이 바라보던 엄마 얼굴에서 숨어 있는 딸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발견한다. 바쁜 생활에 지쳐 가장 소중하지만, 우선순위에서는 가장 뒤로 밀려버린 아들을 쳐다보는 나의 모습처럼.
훗날 자식을 낳게 된 아들은 나에 대해 무엇을 추억하고 무엇을 물려주게 될까.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지만, 그때 내가 듣고 싶었던 그 말 그대로 그냥 사랑한다고, 오래오래 같이 살자고 말해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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