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3일 대구시는 '대구형 도시재생사업(안)'을 발표하고 2020년까지 2천억원을 들여 중구 일대를 역사'문화가 살아 숨 쉬는 '테마형 도시재생지'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임차료 상승으로 세입자만 고통받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쫓겨난 예술인들의 애증이 담긴 김광석길
중구 대봉동 김광석길은 도시재생사업이 원주민을 몰아낸 '정부 주도형 젠트리피케이션'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김광석길에서 공예점을 운영하던 A(53) 씨는 올 초 북구 창조경제단지로 가게를 옮겼다. 지난 2009년 중구청이 벌였던 '김광석길 다시 그리기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A씨는 간판도 없는 빈 점포에서 월세 10만원을 내고 작품활동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했다. A씨는 "지난해 집주인이 바뀌더니 월세를 150만원으로 올려달라고 했다. 목 좋은 자리는 권리금만 8천만원에 달하고 보증금과 월세는 각각 2천만원과 200만원대"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방천시장 부흥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지역 작가들은 유명 음식점이 들어서기 시작한 2014년 가을을 기점으로 대부분 짐을 쌌다. 입구에 있는 김광석 동상을 만든 조각가이자 김광석길 다시 그리기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B(36) 씨는 "김광석 선배를 기리려고 열정을 다했던 예술가들은 떠나고 '관'(官)과 '상업주의'만 남았다"며 속 타는 심정을 털어놓았다.
B씨 역시 지난해 북성로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도 월세가 100만원 상당이라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지만 지인 소개로 비교적 싸게 구한 편이다. 공방 한구석에 먼지가 쌓인 채 보관돼 있던 김광석 동상 원본을 바라보던 B씨는 "북성로뿐만 아니라 삼덕동도 임차료가 올라 예술가들이 정착할 곳이 줄어들고 있다"고 씁쓸해했다.
◆치솟는 임차료에 허리가 휘는 봉리단길
최근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을 본떠 '봉리단길'로 불리는 중구 대봉우체국 일대 골목은 소위 '뜨는 지역'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잘 보여준다.
25일 오후 골목을 찾자 대형 프랜차이즈 음식점들 사이에 낡은 쌀집이 눈에 띄었다. 30년 동안 이 동네에서 장사했다는 60대 주인은 "조만간 집을 빼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뱉었다.
상인회와 주변 부동산중개업소 등에 따르면 과거 50만원 수준이던 월세는 2012년 주택 재건축이 진행되면서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해 지금은 250만원까지 치솟았다. 전체 80여 개 상점 가운데 5, 6곳을 제외하면 세입자가 모두 바뀌었다.
2010년도에 일본식 선술집을 열어 봉리단길 흥행의 첫 단추를 끼웠던 C(35) 씨도 얼마 전 봉리단길을 떠났다. 하지만 C씨는 임차료 때문만은 아니라고 했다. C씨는 "돈 많이 준다는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우후죽순 생기더니 봉리단길 특유의 차분한 맛이 없어졌다"며 "한적한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려고 가게를 옮겼다"고 복잡한 심경을 밝혔다.
◆전통 밀어내는 젠트리피케이션(북성로'약령시)
젠트리피케이션은 조선시대에 형성된 약령시와 해방 이후 만들어진 북성로 공구골목까지 위협한다. 해당 지역 부동산과 중구청 등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북성로와 약령시 임차료는 각각 40만~70만원 수준에서 70만~120만원 수준으로 30% 이상 상승했다. 특히 약령시에서 가장 비싼 점포의 매매가는 3.3㎡당 3천만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인들은 한결같이 앞으로가 더 문제라고 했다. 약령시는 2011년 현대백화점 개관 이후 임차료 상승에 따른 업소 감소로 진통을 겪었으나 하락 폭(2009년 210개→2016년 177개)은 그리 크지 않았다. 북성로도 과거부터 자리 잡고 있는 공구상 420여 곳이 현상을 유지하고 있다. 약령시보존회 관계자는 "최근에는 한방식품을 응용한 전통차를 파는 카페들이 자리 잡으며 주변과 조화를 이룬다. 약령시 정체성과 전통이 유지되는 방안들을 중점적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유입에는 여전히 속수무책"이라며 근심을 드러냈다.
◆전문가, 시민단체 "대책 마련 시급하다" 한목소리
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이 도시 재생의 '어두운 단면'이라고 지적하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지역 발전을 목적으로 정부 예산이 투입된 도시재생사업의 수혜가 소수에게 집중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중구청은 2007년부터 최근까지 ▷김광석길 ▷대구읍성 상징거리 ▷근대문화공간 등 약 20여 가지의 도시재생사업을 펼쳤고, 지난 10년간 투입된 예산만 총 1천억원에 달한다. 대구시는 앞으로도 중구를 중심으로 2천억원 이상을 도시재생사업에 투입할 예정이다.
일찍이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 몸살을 앓은 서울시는 시 차원의 종합대책은 물론 구마다 조례를 만들어 임차'임대인 간 상생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계명대 경제통상학부 김윤민 교수는 "지역 발전의 결과가 소수에게 집중되고, 임차인 등은 일방적으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사회 정의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조광현 사무처장은 "젠트리피케이션 예방 조례안을 1년이 넘도록 심의하지 않은 중구의회에 조례안 심사 계획을 묻는 질의서를 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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