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중견 출판사 '학이사'(學而思)의 신중현 대표가 창사 10주년(2017년 7월 1일)을 맞이해 지난 10년 동안 학이사에서 단행본을 출간한 작가 60명의 자기 책에 대한 생각을 담은 책, '내 책을 말하다'를 출간했다. 집필 동기, 내용, 출간 후 반응, 아쉬웠던 점, 출판사에 하고 싶은 이야기 등을 담고 있다.
◇책 출간 뒤의 작가 생각 듣고 싶어
작가들은 책을 출간한 뒤 이런저런 반성을 한다. 그 반성은 오롯이 자신의 것일 때도 있고, 독자들의 평가에 대한 대답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자기가 쓴 책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책으로 묶어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신 대표는, 이처럼 낯선 책을 펴낸 이유를 "독자만이 출판사의 고객은 아니다. 작가 역시 귀한 고객이다. 책에 대한 글쓴이 본인의 평가(혹은 감상)를 확인함으로써 학이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늠하고, 작가와 독자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책을 만드는 데 길잡이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한다.
'책은 일단 출간되고 나면 더 이상 작가의 것이 아니다'고들 한다. 작가가 어떤 의도로, 얼마나 많은 내용을, 얼마나 깊은 감동거리를 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독자가 어떻게 느끼느냐가 그 책의 가치 혹은 내용을 최종적으로 '완성한다'는 의미다.
예컨대 작가는 '1+1=2'라고 썼다고 할지라도, 독자가 '1+1=3'이라고 느꼈다면, 그 책의 내용은 '1+1=3'이 된다는 것이다.(이것은 말장난이 아니다. 독자가 언제나 작가의 의도대로 책을 이해하거나 감상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 '교과서'가 아닌 '문학류 책이 가진 매력'이다.)
문무학 시인(전 대구문화재단 대표)은 "작가들(고객들)이 학이사에 제기하는 문제들은 학이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출판계의 문제일 수 있다. 따라서 '자기 책에 대한 작가의 평가'는 한국출판산업 진흥에도 기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출판 30년 "출간 때마다 두려워"
2017년 6월 29일은 신 대표가 출판업에 몸담은 지 30년 되는 날이다. 신 대표는 "30년을 오직 '책밥의 힘'으로 살아왔다. 책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속에서 사느라 행복했다. 출판사에 처음 출근하던 날 정말 행복했다. 지금 생각해도 꿈만 같고, 출판사에서 일할 수만 있다면 월급을 받지 않아도 좋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출근길이 즐거웠다"고 말한다.
"책 출판 30년이면 눈 감고도 척척이겠어요?"
신 대표는 고개를 젓는다.
"저는 아직도 책을 잘 모르겠습니다. 편집자로, 영업자로 오랜 세월을 살았는데. 책을 펴낼 때마다 두려움이 앞섭니다."
그는 신간을 낼 때마다, 작가의 마음을, 독자의 요구를 과연 제대로 담아냈는지 항상 두렵다고 했다.
"신입사원이던 시절을 자주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무엇이든 조심하던, 언제나 설레던 그 시절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초심을 잘 지켜온 덕분일까. 학이사는 올해 한국출판학회로부터 '제37회 한국출판학회상 기획'편집 부문'을 수상했다.(2017년 2월 24일) 한국출판학회상은 우리나라 출판문화와 출판학 발전에 크게 공헌한 인사 및 단체를 대상으로 하며, 1972년 제1회 시상을 시작으로 2017년 현재 제37회까지 이어오고 있는 출판계 최고 명예의 상이다.
◇지역 중견 출판사 학이사는?
'학이사'(學而思)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사리에 어둡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논어'의'위정' 편 學而不思則罔(학이불사즉망) 思而不學則殆(사이불학즉태)에서 따온 이름이다.
학이사의 전신은 '이상사'(理想社)다. 우리나라 옥편 출판의 대명사였던 출판사로 6'25때 대구로 피란 온 출판사다. 전쟁이 끝나고 대부분의 출판사들이 서울로 다시 돌아갔지만 '이상사'는 1954년 1월 4일 대구에 출판등록(1-1호)을 하면서 대구시 중구 종로에 새 둥지를 틀었다.
신 대표는 1987년 6월 29일 이상사 편집부 직원으로 입사해 20년 동안 편집자로, 영업사원으로 일했다. 그리고 2007년 '이상사'를 물려받아 '학이사'로 이름을 바꾸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상사'가 옥편, 사서, 학습 부교재를 중심으로 책을 펴내던 출판사였다면, '학이사'는 옥편, 사서, 학습 부교재는 물론, 순수 창작물, 인문, 실용 서적까지 발간하는 종합 출판사로 거듭났다.
학이사는 지방 도시 출판사로는 드물게 잘 짜인 유통망을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서울의 대형 출판사들은 유통 전문회사를 통해, 대형 서점에 책을 보내고 판매를 꾀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소 출판사들은 이런 유통 구조에 편입하지 못한 채 개별적으로 대형서점을 뚫느라 애를 먹는다. 대형 서점 진출이 워낙 힘들어 '서점' 진입을 아예 포기하는 출판사도 많다. 그래서 출판한 책을 서점에 내놓지 않고 작가에게 모두 갖다 줘 버리는 출판사도 많다. 힘들게 쓴 책이 불특정 독자를 만날 기회조차 없는 것이다. 신 대표는 이런 불합리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의 설움을 해소하기 위해 전국을 뛰어다니며 일일이 서점과 접촉했고, 판매망을 구축했다고 한다.
◇대구에서 세계 출판시장 진출
수도권과 비교한다면 대구 출판계는 작고 초라하다. 신 대표는 그러나 "출판사가 대구에 있다고 해서 전국의 독자들과 어울릴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에 '지역' 아닌 곳이 어디에 있나. 서울도 따지고 보면 하나의 '지역'이다. 대구 출판업계가 서울의 출판업계보다 불리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성공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대구에서도 얼마든지 전국으로,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학이사가 출판한 책이 프랑스에서 한국어 교재로 쓰이고(재미있는 글짓기/김몽선 지음), 자녀의 교육 문제를 고민하는 중국의 부모들은 학이사가 펴낸 대구 작가의 책(부모의 생각이 바뀌면 자녀의 미래가 달라진다/윤일현 지음)을 읽는다.
신 대표는 "이처럼 학이사가 만든 책이 전국으로,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쓰고 만들고 읽는, 이 경이로운 일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우리 지역 작가들과 세상을 연결하는 역할을 '학이사'가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는 "함께 쓰고, 함께 만들고, 함께 읽는 데 앞장서겠다. 앞으로도 오직 책을 통해 세상 깊숙이 파고드는 일에 매진할 것이다"고 포부를 밝혔다. 432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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