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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 선생 고향 집터 마련에 힘 보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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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을 사랑하는 사람들' 기부금 모금 중

'포은을 사랑하는 사람들' 정치화 회장이 포은 정몽주 선생의 고향 집터로 살 땅을 설명하고 있다. 배형욱 기자

"충절의 상징 포은 정몽주 선생의 고향인 포항 오천읍 문충리에 고향 집터를 마련할 수 있게 힘을 보태주세요."

포은 정몽주(1337∼1392) 선생의 충절을 기리는 사람들로 구성된 '포은을 사랑하는 사람들'(회원 25명)이 포항 남구 오천읍 문충리에 정몽주 선생의 고향 집터를 마련하고자 팔을 걷었다. 이들은 지난달 초부터 올 연말까지 1억2천만원을 목표로 기부금을 모집하고 있다. 이 기부금은 문충리 마을회관 앞 400여㎡ 부지를 사기 위한 돈으로 사용되며, 사들인 터는 포항시에 기부해 앞으로 고향집을 지을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기부자는 이름을 고향 집터에 기록된다. 18일 현재까지 모인 기부금은 1천만원 정도로, 아직은 목표액에 턱없이 부족하다.

'포은을 사랑하는 사람들' 정치화 회장은 "10여 년 동안 오천에서 포은문화축제를 열고, 역사적 인물로서 문화'역사적 가치를 외쳐댔어도 포은 선생의 고향인 문충리에 가보면 선생을 상징하는 조형물 하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부끄럽기 짝이 없다"고 이번 행사의 취지를 설명했다.

정몽주 선생은 1337년 오천(영일) 정씨 시조 정습명의 11대손으로 외가가 있던 영천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문충리에서 보냈다. 그러다 과거시험을 치르려고 다시 영천으로 떠났고, 과거 급제 이후 고려 수도인 개성으로 건너가 수많은 공을 세웠다. 하지만 조선 건국 직전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다 1392년 선죽교에서 태종 이방원의 부하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후 태종은 그의 충절을 기려 영의정에 추증하고 시호로 '문충'을 하사했다. 세종 때는 정몽주의 시호를 마을명으로 정했다. 이곳이 현재의 문충리이다.

이처럼 문충리는 충절의 고장, 정몽주의 고향으로 인식됐음에도 이곳에는 그가 살던 집터 등 어떤 것도 남아있는 것이 없다. 그나마 학계에서 고증을 통해 정몽주 선생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집터에 표지판을 세워두긴 했지만 사유지여서 관리가 전혀 되지 않고 있다. 유년시절 돌을 밟고 올라가 말을 탔다고 보고 이름 붙인 '승마석'도 밭 주변에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다.

정 회장은 "이 사업은 몇몇 사람으로는 절대 불가하다. 소중한 문화유산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시민들이 힘을 보태달라"며 "기부 희망자는 사무국장 등에게 전화(010-3807-8788)하면 자세한 설명과 기부 방법을 알려 드리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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