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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별이 보이는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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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면 소재지가 그렇듯, 내가 나서 자란 마을도 지금껏 극장이 없다. 내가 극장이란 델 처음 가 본 건 중학교 1학년 때였다. 반공일에 글동무의 권에 못 이겨 여틈한 메 몇을 넘어 그 마을로 놀러 갔다. 발에 채는 게 예(芮) 씨인 집성촌이었다. 개밥바라기 뜰 무렵, 예가 셋에 박가 하나 섞은 까까머리들은 두어 마장 걸어 이웃 풍각면 소재지 극장으로 숨어들었다. 소년 토토가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하던 '시네마 천국'처럼 낡삭은 극장 이마빼기에는 '영등포의 밤' 포스터가 얹혀 있었다. 주인공이 주먹질하다 교도소 가는 걸로 기억되지만, 엉뚱하게 주연이 신성일로 각인돼 있는 마당이라, 그 또한 흐리마리할 뿐이다. 유일무이하게 확실한 건 주제가인 오기택의 '궂은비 하염없이 쏟아지는' 저음이 컴컴한 굴속을 잠시 양각풍(羊角風)처럼 훑고 갔다는 사실이다.

독일어 배울 무렵에는 문화 교실로 읍내 '청도극장'에서 월남전쟁 영화 '그린 베레'(The Green Berets)를 본 정도가 기억된다.

장마당에 가설극장이 차려지던 날은 오정 사이렌이 울기도 전부터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확성기에서 흘러나온 뽕짝들이 저녁연기처럼 고샅길에 무덕지게 깔렸다. 그에 뒤질세라 앞 메에서는 곽공(郭公)들이 목청껏 울었다. 그 노래들 중 넌덜머리 나게 들은 게 박재란의 「임」이었다. '목숨보다 더 귀한 사랑이건만/ 창살 없는 감옥인가 만날 길 없네'. 그리고 사이사이 판에 박은 듯한 선전이 끼어들었다. 그것은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는 이서면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로 말문을 열었는데, 우리는 "문화와 공자와 석가와 예수를 사랑하시는…"으로 패러디했다.

온달이듯 장대에 걸린 갓 등 아래 기도 보는 거쿨진 사내에게 입장권을 디민 구경꾼들이 천국에라도 가는 양 득의만면한 채 장막 속으로 꾸역꾸역 몰려 들어간다. 영사기가 '차르르' 소리 내면서, 물가 돌밭에 마전하는 광목 같은 빛의 띠를 은막에까지 펼친다. 사내들은 문정숙에게 침 흘리고, 계집들은 김진규에 사족을 못 쓴다. 그 행복은 그러나 오래가지 않는다. 이따금 토키(talkie)가 나가 벙어리가 될라치면 젊은 치들은 "도끼, 산에 나무하러 갔나"며 이기죽거린다. 그것만이랴, 쩍하면 영사막마저 깜깜해지곤 한다. 예제서 "돈 내놔라"고 악악거린다.

쇠장(場) 옆 마전(廛) 바닥의 가설극장은 이래저래 탈도 많고 말도 많았다. 하나, 시방은 갈 수 없는 그리운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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