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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문의 한시 산책] 불볕 더위에 소낙비…통쾌함이 두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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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다산 정약용

아무렴 통쾌하지, 통쾌하고 말고 그럼 정약용

지루한 긴 여름날 불볕 같은 더위 먹고 支離長夏困朱炎(지리장하곤주염)

등골에 흐르는 땀 삼베 적삼 축축할 때, 濈濈蕉衫背汗沾(즙즙초삼배한첨)

시원한 바람 불며 소낙비가 쏟아져서 洒落風來山雨急(쇄락풍래산우급)

느닷없이 높은 벼랑 하얀 폭포 걸린다면 一時巖壑掛氷簾(일시암학괘빙렴)

아무렴 통쾌하지, 통쾌하고 말고 그럼 不亦快哉(불역쾌재)

*원제: 不亦快哉行(불역쾌재행: '또한 통쾌하지 않겠는가' 노래. '行'은 노래를 뜻함.)

명말(明末) 청초(淸初)의 빼어난 비평가로 불의에 끝까지 저항하다 처형을 당했던 성탄(聖嘆) 김인서(金仁瑞'?~1661). 그는 '不亦快哉'(불역쾌재)라는 제목 아래, 서른세 가지의 통쾌한 일들을 짤막한 산문으로 표현한 바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병 속에 가득한 물 콸콸 쏟아놓듯, 등 뒤에서 자제들이 책을 좔좔 외워댄다면, 그 또한 통쾌하지 않겠는가!". "겨울밤에 술을 마시고 있는데도 추위가 점점 더 심하기만 하여, 이상하다 싶어 창문을 열자 손바닥만 한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서 이미 서너 치나 쌓여 있으니, 그 또한 통쾌하지 않겠는가!". "여름날 시퍼렇게 날 선 칼을 뽑아서 새빨간 소반 위의 새파란 수박을 쪼갠다면, 그 또한 통쾌하지 않겠는가!" 김성탄의 '불역쾌재'가 바다를 건너와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읽히자, 조선의 선비들이 주체적 입장에서 이를 수용하여, 제 나름의 통쾌한 일들을 표현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도 자신이 생각하는 통쾌한 일들을 스무 수의 한시로 읊은 바가 있는데, 위의 시는 그 가운데서 아홉 번째 작품이다.

보다시피 작품 속의 상황은 지루한 여름일 뿐만 아니라, 기나긴 여름이기도 하다. 게다가 직각으로 떨어지는 뜨거운 햇살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여름이다. 콩죽 같은 땀방울이 등골에 줄줄 흘러, 베적삼이 온통 흥건하다. 만약 죽었다가 다시 깨어날 수만 있다면, 차라리 잠깐 죽어 있고 싶은 설상가상(雪上加霜)의 여름이다. 그때다. 돌연 시원한 바람이 쏴아~ 쏴아~ 불어오더니, 아닌 밤중 홍두깨처럼 난데없이 장쾌한 소낙비가 쏟아진다. 바로 그 흔쾌한 소낙비로 아찔한 벼랑에 호쾌한 폭포가 대번에 걸린다. 이른바 금상첨화(錦上添花)의 상황이다. 반전 중에서도 너무나도 돌발적인 반전이기 때문에, 설상가상과 금상첨화가 아주 극명하게 대조되면서, 그 통쾌함이 곱빼기의 곱빼기로 솟구쳐 오른다. 그러니 어찌 통쾌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일찍이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참말로 무더운 여름이다. 애간장을 죄다 태우기로 아주 작심을 했는지, 다른 데는 대중없이 내리는 비도 도통 죽어라고 오지 않는다, 우와 짜장 짜증이 난다. 이럴 때 선풍기를 강풍으로 돌려놓고, 냉장한 해병대 얼룩무늬 수박에다 시퍼런 칼을 들이대는 순간, 수박이 깜짝 놀라 두 동강이 나며 시뻘겋게 이글대는 마그마 속에서 새까만 씨 대여섯 개가 한꺼번에 투두둑 튀어나와, 그 가운데 서너 개가 내 얼굴에 떡 들러붙는다면, 그 또한 통쾌하지 않겠는가! 아무렴 통쾌하지, 통쾌하고 말고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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