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곳, 내 마음의 안식처] 아동문학가 서정오-의성 고운사

고운사 숲길에 서면 꿀벌의 날갯짓 날 반겨 무념무상 마음이 둥둥

의성 고운사 들어가는 길에 있는 숲길. 서정오 작가의 마음속 안식처다.
의성 고운사 들어가는 길에 있는 숲길. 서정오 작가의 마음속 안식처다.
지도. 아동문학가 서정오(왼쪽)
지도. 아동문학가 서정오(왼쪽)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겠다는 일념으로 옛이야기 심부름꾼을 자처했던 아동문학가 서정오 작가의 안식처는 의성 고운사 가는 길이다. 고운노인요양원이 자리 잡은 곳부터 시작돼 고운사 등운교까지 이어지는 1㎞가 채 안 되는 숲길이다.

이곳을 찾은 이들은 숲길을 앞두고 간단한 시험에 빠지는 듯했다. 고운사 일주문 앞에 너른 주차장이 있어 자동차를 타고 가도 괜찮았고, 걸어가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모두들 고운사 대웅전을 목적지로 둔 듯했다. 그러나 걸어가는 이는 드물었다. 맨발로 가기에도 좋을 흙길을 자동차 타이어에 양보하고 있었다.

서 작가의 옛집은 안동 남후 무주무라는 곳이었다. 의성 단촌에 있는 고운사까지는 40리 길, 16㎞다. 어린아이가 걷기엔 보통 먼 게 아니다. 길은 어디로든 이어져 있을 거라 그 시절엔 짐작했다. 지금 걷고 있는 곳이 안동인지 의성인지, 혹은 남후인지 단촌인지 애써 분간해도 실익은 없었다.

"과수원에 있는 사과 따먹으면서 갔지요. 그때 도시락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도 그때는 어디서 힘이 나곤 했는지 사과 몇 알만 먹고도 고운사까지 다녀왔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걸었나 싶어요."

놀기 삼아 찾은 고운사를 앞두고 작가의 안식처인 '숲길'에 서면 마음은 둥둥 떠올랐다. 상장을 받으러 전교생의 눈이 쏠린 단상에 오르기 직전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때는 목적지에 닿았다는 기쁨이었겠죠. 지금은 좀 다르죠. 무념무상, 정화되는 기분이 스르르 몸을 감싸요. 소음이라곤 나무와 벌레들이 움직이는 소리 정도죠. 꿀벌의 날갯짓마저 들리니까요."

빠른 걸음으로 10분 거리건만 나무들이 팔 벌려 환영하는 통에 도저히 빨리 걸을 수가 없었다. 빨리 걸어서도 안 될 것 같았다. 아무 데나 앉아 쉬고, 걷고, 앉고 하길 여러 번. 땀이 약간 배어 나올 즈음엔 더 이상 갈 생각도 없어졌다.

'아하, 이래서 작가가 혼자 가보라 했구나. 자신도 철저히 혼자를 고집했구나.'

그러나 호객행위가 없어, 장사꾼들이 없어 호젓했던 고운사 가는 길엔 새 주인이 들어서고 있었다. '3대 문화권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건물과 공원이 여백을 채우는 중이었다. 공사는 장기간 이어지고 있다. '고운사문화공원'이라는 이름도 붙었다. 내년 상반기 개관 예정이라는 최치원 문학관과 전시관의 누런 들보는 굵고 힘차 보였다. 굴러온 돌이 주인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래 묵은 된장 빛 기둥의 고운사 나한전과 앞뜰에 선 삼층석탑이 문득 떠올랐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