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6천 살 지구

지구가 46억 년 전쯤 태어났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이것이 상식으로 자리 잡는 데는 긴 세월이 걸렸다. 지구가 영겁의 세월 동안 존재해왔다는 믿음 체계가 있었던 동양과 달리, 서양에서는 17세기까지만 해도 지구 나이가 6천 살이라는 믿음이 보편적이었다.

17세기 아일랜드의 제임스 어셔 주교는 지구가 BC 4004년 10월 26일 오전 9시에 탄생했다고 발표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의 관계와 나이를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가 합산해 도출한 결과였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지금 지구의 나이는 6천61살이다. 사회를 강력히 지배한 종교적 권위에 의해 이 주장은 서구 세계에서 오랜 기간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20세기 들어서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한 연대 측정법이 등장하면서 인류는 지구의 정확한 나이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현재 과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지구 나이는 45억6천500만 년이다. 그런데도 요즘 지구의 나이가 6천 살이라고 믿는 이들이 있다. 일부 기독교인들이 제시하는 이른바 '창조과학'에 의하면 BC 5500~4000년 사이에 천지창조가 있었다. 창조과학은 우주 만물이 초자연적인 존재인 신에 의해 창조됐다는 교리를 과학의 영역에 도입하려는 시도의 결과물이다.

창조과학을 표방하고 나선 기독교인들이라고 해서 지구 나이 6천살설, 즉 '젊은 지구설'을 모두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창조과학 신봉자 중에는 우주 나이가 130억 년 되었다는 이른바 '늙은 지구설'을 주창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지구 나이에 관한 명확한 구절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지구 6천살설도, 늙은 지구설(창조설)도 인간의 해석일 뿐인 것이다.

최근 국회 인사 청문회장에서 한 국회의원이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에게 "지구 나이가 6천 살이라고 믿나?"라는 질문을 뜬금없이 던져 이목을 끌었다. 기독교 신자로 알려진 박 후보자는 "과학적으로 지구 나이 6천살설에 동의하지 않지만 신앙적으로는 믿는다"며 피해 나갔지만, 결국 이런저런 논란 끝에 15일 장관 후보직에서 물러났다. 업무 능력과 아무 상관없는 질문을 던지는 국회의원이나 애매하게 답하는 후보자 모두 보기에 딱했다. 창조과학 심포지엄에서나 들을 법한 말들이 21세기 대한민국 국회에서 오가는 것 자체가 웃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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