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백제 왕으로서의 마지막 싸움
처절한 패배를 안고 일선에서 돌아온 견훤은 깊은 고뇌에 빠졌다. 뒤돌아보니 그의 나이 어느새 일흔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생을 싸움터에서 보내기에는 얼마 남지 않은 세월이 아깝지 않으냐고 탄식하던 왕건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후삼국의 새로운 주인을 가리는 판세는 누가 신라를 차지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힘으로 몰아세웠던 자신과 달리 호족들을 설득하며 신라를 끌어안는 정책을 추구하던 왕건과의 싸움은 숙명이었다. 겨울바람이 문풍지를 흔드는 소리는 그의 마음을 더욱 시리게 했다. 스스로는 멈출 수 없는 이 지루한 싸움을 언제쯤 끝낼 수 있으려는지.
밤새 몰아치던 삭풍은 아침이 되어도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더욱 거세진 바람에 눈발이 흩날리는가 싶더니 급보가 날아들었다. 왕건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운주(충남 홍성)로 내려오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전쟁과는 다른 양상이었다. 나주에서의 싸움은 백제의 후방이었고, 고창과 공산은 신라 영역에서 치렀던 싸움이었다.
그러나 운주는 고려의 접경지대이며 후백제의 북방으로 그곳을 빼앗기게 되면 금강 북쪽의 영역이 모두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견훤은 바람이 불면 흔들릴 수밖에 없는 문풍지 같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평생을 보낸 백전노장인 그로서는 새로운 각오로 전투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934년 정월의 어느 날, 왕건을 반드시 꺾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정예 병력을 이끌고 68세의 노구를 몸소 일으켰다.
◆결정타를 맞은 운주성 전투
견훤은 5천의 갑사 병력을 내세움으로써 아직도 강력한 군대가 건재하다는 것을 적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왕건의 기세를 꺾어보고자 했다. 그러나 이미 운주성을 점령한 왕건의 부대는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적을 기다리고 있었다. 더구나 고창전투에서 맹활약하던 유금필 장군이 선봉장이 되어 버티고 있었다.
피할 수 없는 전쟁이라면 기필코 이겨야 하는 싸움이었다. 그는 정예의 군사들로 이루어진 갑사부대를 내보냈다. 갑옷으로 중무장하고 말에도 갑옷을 입혔으니 적진을 돌파하기에 충분했다. 제아무리 유금필이라도 결코 꺾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유금필은 거침이 없었다. 기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갑사부대의 약점을 정확하게 파악하였다. 빠른 기동력과 순간 대처 능력이 탁월한 경기병(유목민족계 기마병)을 투입하더니 창을 든 후백제군에게 활로 대응했다. 제대로 대오를 갖추지도 못한 상태에서 기습해 오는 유금필에게 견훤은 허를 찔리고 말았다.
5천 명의 병사 중 3천 명이 전사했고 많은 병사가 부상을 입었으며 웅진 이북의 여러 성이 고려로 넘어갔다. 그것이 견훤에게는 후백제 왕으로서의 마지막 싸움이었다. 참담한 패배로 물러설 때가 되었음을 뼈저리게 느낀 견훤은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를 놓고 고심하기에 이르렀다.
왕건이 그랬던 것처럼 견훤 또한 각 지역 호족의 딸과 결혼함으로써 10여 명의 아들을 보았다. 처음에는 장남인 신검을 후계자로 지목했었다. 전쟁터를 함께 누비며 지휘 능력과 전투 경험을 쌓게 했다. 후계자로서의 역량을 펼치려 노력하던 신검은 933년 신라의 수도인 경주를 급습했다가 유금필에게 대패했다. 후백제의 동부전선이 크게 무너지면서 신검의 왕위 계승 구도에 먹구름이 끼었다. 신검의 능력에 의문을 가진 견훤은 공산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데 크게 기여한 넷째 아들 금강(金剛)을 후계자의 물망에 올렸다. 후계자 선정은 권력투쟁이 일어날 수 있는 민감한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강을 특별히 생각한 것은 기골이 장대하여 제왕에 걸맞은 체격을 가졌으며 지략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견훤의 마음이 이복형제인 금강으로 기울었음을 눈치 챈 신검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신검은 강주와 무주의 군사권을 장악하고 있던 동복형제 양검과 용검을 불렀다. 자신을 지지하던 호족의 대표인 능환과 더불어 음모를 꾸몄다.
◆아들 신검의 정변으로 금강사에 유폐되다
935년 3월에는 꽃을 시샘하는 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견훤은 자신을 향해 고함치는 왕건의 목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꿈에서 들리던 그 소리가 대궐의 뜰에서 계속 들려왔다. 견훤은 신검을 불러 바깥의 동정을 물었다.
"폐하께서는 이제 연로하시어 군국(軍國)의 정사(政事)에 어두워지셨습니다. 이제 소자가 폐하의 자리를 대신하려 하옵니다."
"신검 네 이놈!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느냐."
"폐하 만백성과 군사들이 소자가 왕이 되길 원하옵니다. 여러 대신도 소자를 왕으로 받들겠다고 하였으니 이제 폐하께서는 금산사로 들어가셔서 여생을 편히 지내시옵소서. 여봐라. 폐하를 금산사로 모셔라."
신검의 갑작스러운 정변에 견훤은 속절없이 당하고 말았다. 신검은 군사를 보내 금강을 죽이고 자신의 아버지인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했다. 금산사는 후백제 왕실과 깊은 관계를 맺은 곳으로 견훤이 중창시킨 사찰이었다. 그는 편하게 드나들며 마음의 위로를 얻던 곳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게 된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들을 제쳐 두고 고려로 귀부해 버린 아버지 아자개로 인해 많은 날을 원망으로 살았던 그였다. 이제는 자신의 아들이 배신하니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제가(齊家)도 제대로 못 했으면서 나라를 다스리려 했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견훤은 왕의 자리를 탐한 신검은 용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원통하게 죽은 아들 금강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져 참을 수가 없었다. 신검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으로 몇 날을 잠들지 못하던 중, 물이 깊어 못 온다면 나룻배 한 척을 띄워 주리라던 고려 왕의 말을 떠올렸다. 왕건이라면 반드시 자신을 받아 주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에게로 가기 위해서 우선 선물 하나를 마련했다. 고려에 빼앗겼던 나주가 당시에는 후백제의 땅이 된 지 여러 해가 되었다. 그런 가운데 무주 도독 용검이 신검의 정변을 돕기 위해 병력을 모두 빼서 전주로 올라온 상황이었다. 방어력이 떨어진 나주의 사정을 왕건이 눈치챈다면 그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을 것이다. 견훤은 나주를 왕건에게 안겨주기 위해 감시의 눈을 피해 금산사의 승려 편으로 서신을 보냈다. 아무리 깊은 물일지라도 무사히 건널 수 있는 튼튼한 배 한 척을 띄워 달라는 부탁의 말도 함께 썼다.
◆왕건이 띄워 준 배 위에 올라
눈을 뜨면 갇혀 있는 현실과 마주해야 했던 견훤은 차라리 아침이 오지 않길 바랐다. 그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새들은 어김없이 아침을 열었다.
'서신이 제대로 전달이 안 된 것일까? 왕건이 쓸모없는 늙은이라고 자신의 뜻을 무시한 것일까?'
오지 않는 소식을 기다리던 견훤의 가슴에 또다시 물결이 일었다. 그날 오후, 사위인 박영규가 견훤을 찾아왔다. 신검의 매제였기에 그는 금산사 내왕이 비교적 쉬웠다. 박영규는 평소와는 달리 목소리를 낮추었다.
"폐하, 지금 떠나야 하오니 채비를 하시옵소서. 유금필 장군이 나주에서 폐하를 기다리고 있다 하옵니다."
"그러하냐? 고맙구나."
견훤은 너무나 기다리던 소식을 접하니 기쁘기 한량없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되었다.
"나를 지키고 있는 군사들이 있는데 어찌 이곳을 빠져나간단 말이냐?"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제가 너삼 뿌리를 섞은 독주를 한 잔씩 돌려놓았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옵소서."
견훤은 박영규와 함께 자신을 지지하는 호족들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나주로 향했다. 왕건은 견훤이 선물로 준비한 나주를 기꺼이 받아들여 유금필 장군을 보냈다. 그는 대규모의 수군을 이끌고 나주를 확보해 놓고 견훤을 기다리고 있었다. 눈엣가시처럼 거슬렸던 적장에게 자신의 안위를 맡겨야 하는 견훤의 심정은 복잡했다. 그러나 인생에 있어 영원한 적도 영원한 내 편도 없음을 깨달았다. 자신이 반평생을 바쳐 일구어 놓은 땅을 미련 없이 버린 채 유금필과 함께 영산강을 따라 서해안으로 빠져나가 왕건에게로 갔다. 그 옛날, 자신의 아버지인 아자개가 그랬던 것처럼.
견훤이 고려로 귀부했다는 소식을 들은 신검은 믿기지 않았다. 그로 인해 나주가 고려에 장악되었다는 사실은 차라리 꿈이기를 바랐다. 견훤을 지지하던 세력의 반발이 심해지면서 그는 권력을 쉽게 장악할 수 없었다.
'거센 저항을 잠재울 방법은 진정 없는 것일까?'
분노에 가득 찬 신검은 반대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했다. 신검의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고창전투와 일선군에서 패했던 그의 아버지는 정세가 불리해지자 고려의 수도 개경을 급습한 적이 있었다. 견훤이 예성강을 거슬러 올라가 기습적으로 왕건의 목숨을 노렸던 것처럼 신검에게도 극적인 반전이 필요했다. 그는 아버지가 못 한 일을 자신이 이룰 수만 있다면 권력 기반을 안정시킴은 물론 후삼국의 통일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신검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비명에 정신을 차렸다. 대궐 근처에 갑자기 출현한 멧돼지로 인해 소란이 일었는데, 호위 병사 하나가 막대기를 던져 도망치는 놈을 잡았다고 했다. 우울한 마음을 벗어나고픈 신검은 놈의 최후를 보기 위해 현장으로 나갔다. 얼떨결에 집어던졌다는 막대기가 놈의 거대한 몸통에 깊이 박혀 있었다. 움직이는 동물을 막대기 하나로 잡았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버둥거리며 발악하는 멧돼지를 보면서 신검은 왕건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래 그거야.'
놈을 쓰러트린 병사를 불렀다. 그를 바라보던 신검은 무엇인가를 결심한 듯 의미 있는 표정을 지었다.
운주성 싸움의 결과로 대세의 흐름을 감지한 신라에서도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견훤의 귀부 소식까지 들려왔으니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종묘사직을 고려에 넘겨 백성들만이라도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935년 11월 왕과 신하들이 직접 개경으로 가서 왕건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명목상으로만 존속하던 신라는 천 년 사직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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