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제는 개인감정을 갖지 않는다. 관료의 권위가 영혼 없는 전문가와 감정 없는 쾌락주의자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근대 관료제의 속성을 해부한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있다고 인용되는 유명한 언명(言明)이다. 기자도 2016년 11월 28일 자 본란에서 그렇게 쓴 바 있다.
이제야 고백하건대 도서출판 길에서 펴낸 번역본을 뒤져 봤는데 그런 문구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책의 맨 뒤에 있는 '찾아보기'를 뒤졌더니 '전문 관료'라는 용어가 들어 있었다. 얼른 관련 부분을 읽어봤지만 역시 기자가 찾으려는 문구는 없었다.
하지만 '정치학의 고전'으로 불리는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보면 그와 비슷한 문구가 나온다. "관료의 명예는 그의 상급자가 그(관료)가 보기에 잘못된 명령을 그(관료)의 이의 제기에도 불구하고 고수할 경우, 그 명령자의 책임을 떠맡아 이 명령이 마치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듯이 성심을 다해 정확히 수행할 수 있는 능력에 기초를 두고 있다."
요약하면 관료는 자신의 신념이 아니라 상관의 신념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해 관료는 영혼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베버는 관료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국가는 존립할 수 없다고 했다. "관료가 이런 규율에 따르지 않거나 자기 절제를 하지 못한다면 국가기구는 붕괴하고 말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이와 정반대로 얘기했다. 공무원은 영혼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8월 22일 새 정부 첫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공직자는 국민과 함께 깨어 있는 존재가 되어야지, 그저 정권의 뜻에 맞추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 돼서는 안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금과옥조로 삼을 소리지만 공무원에게는 '문재인 정권이 아닌 다른 정권의 뜻에 맞춘 공무원은 영혼 없는 공무원'이란 뜻으로 들렸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고용노동부가 박근혜 정권의 노동개혁 상징인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의 2대 지침을 폐기하면서 박 정부의 노동개혁에 관여한 고위 공무원을 산하 기관이나 지방으로 내려 보낸 것은 그런 생각이 편벽되고 불순한 의심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러면 문 대통령이 비판한 '영혼 없는 공무원'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국정교과서 폐기, 성과연봉제 도입 백지화, 4대강 사업 네 번째 감사 착수 등이 그 답이 될 것 같다. 문 정부 뜻에 맞추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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