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너지 분권 시대로] <하>에너지 분권 실천과 과제

생활 습관 바꿔 전기 절약…태양광 발전 시민 참여해야

이달 9일 대구시민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열린
이달 9일 대구시민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열린 '에너지반상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자신의 전기 절약 경험과 노하우를 함께 나눴다. 이들은 대기전력 줄이기와 LED 조명 교체 등 각자가 실천한 사례를 설명했다. 서광호 기자.

에너지 분권을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시민이 주도하는 실천이 밑바탕이 돼야 한다. 전력 소비자이자 생산자라는 '에너지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마을과 동네 등 작은 공동체의 자발적 참여도 중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정책과 제도 추진이 뒤따라야 한다. 서울시와 경기도 등 다른 지방자치단체는 전력 자립과 에너지 분권을 앞서 추진하고 있다. 지방자치의 내실화를 가져올 에너지 분권을 위한 대구의 과제를 살펴봤다.

◆시민들의 작은 실천

이달 9일 오후 2시 대구 중구 대구시민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에너지 반상회'가 열렸다. 대구지속가능발전협의회의 사회혁신실험실 '에너지 자립 도전 프로젝트'에 참여한 시민 2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지난 7월부터 시작한 에너지 진단 컨설팅과 자립 실천 사례를 공유했다.

동구 각산동에 사는 김미진 씨는 올해 8월 전기사용량이 172.5㎾h로 1만4천790원만 요금으로 내면 된다. 지난해 같은 달 전기요금(6만265원'340㎾h)보다 4만5천475원이나 절감했다. 전등을 LED로 교체한 것이 가장 큰 효과를 봤다. 진단을 받은 대로 생활습관을 바꾼 덕분이다.

채수헌 씨는 LED 전등을 손수 설치해 비용을 줄였다. 80만원이 넘는 LED 설치비를 30만원으로 낮췄다. 절약 효과도 컸다. 기존 백열등은 전력소비량이 1천30W였지만 LED 교체 후 290W로 72%나 줄었다. 채 씨는 이날 LED 전등 설치 방법을 상세하게 소개했다. 제품 주문과 조립, 설치, 전선 연결 등 노하우를 공유했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33가구는 모두 맞춤형 진단을 받았다. 가장 많이 지적된 사례는 대기전력이다. 쓰지 않는 전자제품 콘센트를 꽂아 두니 낭비가 발생했다. 생활 습관의 중요성도 깨달았다. 전기밥솥 사용 때 보온 기능을 자제하고, 에어컨은 제습'송풍 기능을 활용해 전력소비를 줄였다. 멀티탭에 이름표를 달아 쓰지 않는 스위치를 내렸다. 몰아서 빨래함으로써 세탁기 사용 횟수를 줄이고, 전기청소기는 최강 모드 사용을 자제했다.

이날 함께한 서울의 에너지 자립마을 '성대골 사람들' 김소영 대표는 시민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대표는 "에너지 시스템을 국가에만 맡긴다는 생각은 낡은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1인당 전력소비량은 일본, 프랑스, 독일, 영국 등 다른 나라와 비교해 가파르게 증가하는 등 수요 관리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민들이 스스로 전력을 아끼고 태양광 발전에 참여하는 등 책임의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지역의 에너지 분권 움직임

에너지 분권을 위해 전국 곳곳에서 지역 차원의 에너지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중앙정부 중심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다. 수요 관리를 바탕으로 전력 자립을 위해 뛰고 있다. 전담 부서를 만들고 지역에너지센터를 설립하는 등 자체 실행 조직을 갖췄다.

서울시가 가장 눈에 띈다. 2012년부터 '원전 하나 줄이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전력 자립률을 2020년까지 20%로 높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전담 부서(에너지시민협력과)를 꾸렸고, 지난해에는 서울에너지공사를 설립해 에너지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겼다. 공사는 '서울형 에너지 자립도시'를 위해 친환경 집단에너지 공급 확대와 전기차 보급을 위한 기반 확충 등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11년 2.9%에서 2015년 5.5%로 자립률을 올렸다. 지난해 줄인 전력량이 1만6천GWh로, 대구 전체 사용량과 비슷했다.

서울시는 태양광 중심 신재생에너지 생산 기반을 다졌다. 서울형 발전차액 지원제도(FIT)를 도입해 태양광 전기 지원금을 1㎾h당 50원에서 100원으로 늘렸다. 태양광 미니발전소(250W)도 2014년부터 보급하기 시작해 매년 2.5㎿ 이상을 공급했다. 2020년까지 19.25㎿를 보급할 계획이다. 주택용 태양광시설(3㎾)도 2천600곳에 7.92㎿를 설치한다는 목표다.

경기도는 '에너지 비전 2030'을 선언했다. 2030년까지 노후 원전 7기를 대체한다는 계획이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신재생에너지를 생산해 전력 자립도를 2013년 29.6%에서 70%로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공공기관과 아파트 조명을 100% LED로 교체하고, 모든 신축 공공 청사를 에너지 자립 건물로 건설하려 한다. 컨설팅에서 사후 관리까지 에너지 원스톱 서비스도 제공한다. 에너지과 신설과 경기도지역에너지센터(2개팀 10명) 설치 등 실행 조직 역시 갖췄다.

충청남도는 탈석탄 에너지 전환을 내세웠다. 가정용 신재생에너지 확산과 기업의 에너지 효율화, 에너지 절약 운동 등으로 500㎿급 석탄화력발전소 5기를 줄인다는 계획이다. 지난 7월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충남에너지센터를 설립하는 등 신재생에너지 보급과 에너지 효율화 추진에 앞장설 것이라고 발표했다.

부산시도 지난 6월 '클린에너지 시티' 정책을 내놓았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발맞춰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보급률을 30%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를 총괄할 클린에너지정책관(3급)을 7월 1일 자로 채용하고, 민관협의체기구인 에너지정책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부산에너지공사 설립도 추진 중이다.

◆청정에너지 자립을 위한 과제

이제 에너지 분권은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 참여다. 관 주도에서 벗어나 시민이 적극적으로 동의해야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을 이룰 수 있다. 중앙정부에서 지역으로 에너지정책의 축을 바꾸는 공감대 형성이 필요한 것이다.

김해동 계명대 지구환경학과 교수는 "생산단가가 낮은 에너지원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정책 탓에 원자력과 석탄 발전 중심으로 전력 보급이 이뤄져왔다"며 "에너지 외국 의존도를 완화하는 차원에서 지역 중심의 전력 자립을 이뤄야 하고, 이를 시민들이 지지하도록 홍보와 비전 제시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자체의 권한 확대와 재정 확보도 필수이다. 정부의 전력수급 기본계획 등 지역에 영향을 미치는 에너지 계획은 수립 과정에서부터 지자체 참여가 있어야 한다. 중앙정부 주도의 사업별 지원 방식에서 포괄보조금으로 전환해 지자체 역할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 에너지 분권을 전담할 조직을 구성하는 한편 중앙과 지방의 업무 배분이 이뤄져야 한다.

특히 대구는 앞으로 LNG발전소를 확충할 계획이다. 발전 비용이 비싸 가동률이 떨어지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LNG발전 비용이 비싼 건 세금 탓이어서 지자체 역할이 제한돼 있다. 현재 발전용 LNG에는 1㎏당 90.8원의 세금이 붙는다. 이는 발전용 유연탄 세금(30원)보다 3배나 많다. 에너지 관련 세법 개정을 비롯해 전력수급계획에 지자체 목소리가 반영돼야 하는 이유이다.

진상현 경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방자치 확대라는 흐름과는 반대로 에너지 분야에선 중앙정부가 발전소와 송배전 등 공급은 물론 수요관리까지 독점하고 있다"며 "정부는 에너지 자립 기반 조성을 위해 권한과 조직, 예산을 지자체에 분산하고, 지역에선 에너지공사나 에너지센터 등 지역 에너지정책을 총괄할 자체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지원도 강화해야 한다. 일본은 신재생에너지 전기를 고정가격에 사들이는 제도를 시행하고, 가솔린 세금의 10%를 지방세로 전환해 지자체가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수철 나고야 메이죠대학교 교수는 "대규모 신재생에너지 사업자는 의무공급제도로 육성하고 지역의 소규모 사업자는 고정가격매입제도로 보호해야 한다"며 "지역의 에너지 자립 시민사회가 형성될 수 있도록 일부 에너지 관련 과세권을 지자체에 이양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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