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재일 경북인 4만9천358명이 고향으로 송금한 돈은 110만3천757원으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액수.'
일제강점기 시절 경북경찰부가 독립운동가를 감시, 체포, 고문하는 악명 높은 고등계 형사를 위해 만든 비밀교과서와 같은 '고등경찰요사'에 나오는 기록이다. 일제 등쌀에 경북인들은 나라를 등졌다. 세계 곳곳으로 흩어진 경북 사람 가운데 1928년 기준 일본에만 4만9천358명이 살았다. 1927년 말 재일 한국인 17만5천91명의 28%다. 재일 한국인 75%가 노동으로 버틴 것처럼 경북인도 그러했을 터이다.
하지만 일본 속 경북 사람들은 고향의 가족에게 번 돈을 보냈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액수'인 110만3천757원은 1928년 대구부(大邱府)의 1년 세입(경상부+임시부) 98만7천372원보다 많다. 특히 송금된 돈은 독립자금으로 흘러갔다. 나라 안에서 독립군자금을 기꺼이 낼 백성은 이들 말고는 없었다. 상황이 그랬다. 당시 한국 경제의 80%는 일본인 몫이었다. 한국인 2천만 명의 80%가 문맹(文盲)이었다. 농민이 80%이고 이들의 70%쯤이 소작 등으로 가난했다. 독립군자금을 내놓을 사람은 뻔했다. 못 배우고 가난하지만 송금받은 백성과 일부 한국인 자산가를 빼면 누구도 돈을 낼 일은 없었다.
이처럼 나라 밖으로 내몰린 한국인이 노동과 장사로 번 돈을 군자금으로 내놓은 사례는 숱하다. 이들의 활동, 특히 '인삼 행상'은 중국 상하이, 홍콩에서 태국, 싱가포르의 남양(南洋)에 이르기까지 '발을 디디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넓었다'. 또 '화교(華僑)가 있는 곳이라면 전 세계 어디든지 한국 인삼 행상들의 존재를 찾을 수 있을'만큼 나라 밖 살길 찾기는 눈물겹다. 이렇게 번 돈은 독립자금으로 헌납되고 이들은 '총대 없는 상인독립군'이 됐다.
이들 이야기는 흔히 중국 화교에 견줄 만하다. 일찍 나라 밖 남양으로 살길을 찾아 나선 중국인들이 뒷날 고국 혁명의 든든한 자금줄이 된 일과 같은 맥락이어서다. 해외 화교들이 혁명 인사를 도우면서 중국 혁명지도자 손문(孫文)의 말처럼 '화교는 혁명의 어머니'였다. 맨몸의 노동으로, 한국 특산품 '고려인삼'으로 세계 곳곳을 누비며 번 돈을 독립운동가의 군자금으로 낸 노동자, 행상의 나라 밖 한국인은 총을 든 독립투사와 다르지 않았다.
뜬금없이 옛날이야기를 끄집어낸 것은 지금 나라 곳곳에서 이뤄지는 청년지원 정책이 생각나서다. 지금 일자리를 찾지 못해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 이 나라 젊은이를 위해 전국 지자체마다 '청년수당'(서울시), '청년디딤돌카드'(부산시), '청년배당'(성남시) 같은 여러 이름을 붙인 예산을 지원하거나 그런 비슷한 일을 추진하는 듯하다. 대구시에서도 어제 '청년희망 공감토크 청년수당에 대하여'라는 주제의 행사를 갖고 대구 청년을 위한 지원 정책 마련에 나선 모양이다. 대구시 조사 결과,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16년간 대구를 떠나는 청년의 발길이 멈추지 않다 보니 이해할 만하다.
청년 지원을 마다하거나 주저할 일은 아니다. 대구 청년이 대구를 떠나지 않고 머물며 고향을 지킬 수 있으면 더없이 좋겠지만 떠나는 젊은이 대부분 일자리를 찾아 대구를 등지는 만큼 이들을 붙잡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일시적인 예산 지원을 통해 청년의 대구 머물기를 유도하기보다 대구를 떠나서도 일자리를 찾도록 하는데 돈을 쓸 필요가 있다. 지금 경북도에서 2013년부터 시작한 '청년무역사관학교' 사례처럼 대구 젊은이가 나라 밖 무대를 향해 꿈을 도전하도록 하는 지원 말이다.
옛 기록 특히 가장 엄혹했던 일제강점기 대구 젊은이는 뛰어났다. 도전, 모험을 마다치 않았고 개방적이고 진보적이었다. 지금의 대구 모습과는 사뭇 다른 삶을 살았다. 그때보다 더욱 자유로운 지금, 대구 젊은이라고 굳이 대구와 나라 안에만 머물러야 할까. 이왕 돈을 쓰려고 했다면 나라 밖에서 꿈을 키울 수 있도록 해보면 어떨까. 어쩌면 이들이 대구를 구할 '미래 독립군'이 될지 누가 아는가. 당국의 발상 전환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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