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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행에 폭탄 의거…대구의 장진홍 의사 기억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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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거 90주년 맞아 재조명 운동…만주·연해주 돌며 독립운동, 대구형무소서 자결 순국

"대구경북이 내세울 만한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가 무관심 속에 잊혀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된 장진홍(1895~1930) 선생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의거 90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10년 넘게 장 의사의 재조명에 힘써온 향토사학자 김종욱(75) 씨의 표정은 다소 어두웠다. 장 의사는 대구가 자랑스럽게 내세울 만한 독립운동가임에도 무관심 속에 잊혀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 씨는 "선생의 고향인 경북 칠곡에 흉상, 기림비가 있긴 하지만 정작 의거지이자 순국지인 대구에는 그를 기릴 수 있는 곳이 아직 한 곳도 없다"며 "관청과 시민들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했다.

경북 칠곡에서 태어난 장 의사는 1916년부터 만주와 연해주를 오가며 독립운동에 투신했지만 일제의 시베리아 출병 등 악재를 만나 귀향했다. 이후 부산에서 약방을 하며 살아가던 중 동료 소개로 조선 독립에 우호적인 일본인 폭발물 전문가 호리키리(掘切)를 만나 사제 폭발물 제조법을 전수받았다.

시행착오 끝에 그는 1927년 10월 18일 대형 폭탄 4개를 만들어 대구 중심가에 있던 조선은행'경북도청'경북경찰부'식산은행에 보냈다. 비록 원하던 성과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대구 한복판에 울려 퍼진 굉음은 민족의 독립 의지를 안팎에 과시하기에 충분했다. 김 씨는 "당시 대구 중구 포정동에 있던 조선은행 대구지점 주변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은행 건물 유리창이 모두 깨지고 잔해가 대구역 인근까지 날아갔을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장 의사는 이후 3년 가까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도피생활을 이어가다 결국 한 친일파의 밀고로 붙잡혀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사형을 선고받으면서도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등 기개를 꺾지 않았고, 일제의 손에 치욕적 죽음을 맞이하느니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며 대구형무소에서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생애는 연극 '그날'로 제작되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옛 조선은행 터에 곧 새로 들어설 건물에는 그의 의거와 순국을 알리는 기림비와 쌈지공원이 조성될 예정이다. 김 씨가 10년 넘게 시청과 구청을 찾아다니며 그의 재조명을 요구해온 성과다. 김 씨는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장 의사의 존재를 알릴 수 있어 다행"이라며 "이를 계기로 더 많은 대구 시민들이 지역에 이런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가 있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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