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영 중인 드라마 '이번 생이 처음이라'에서는 집을 구하지 못해 월세를 깎아주는 남성과 2년간 계약결혼을 하게 되는 여자 주인공의 스토리가 등장한다. 그녀는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드라마 작가를 꿈꾸며 5년 동안 보조작가 생활을 했지만 결국엔 백수로 집도 절도 없는 처지가 됐다.
이 드라마 속에는 우리 사회 청년 여성의 문제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주인공은 올해 30살로 1988년에 태어난 88만원 세대를 대변한다. 보조작가라는 계약직은 저임금에다 살인적인 노동강도에 시달리며 근로계약서도 없으니 해고도 손쉽다. 운 좋게 '입봉' 기회를 잡나 싶었지만 PD는 그의 어려운 처지를 이용해 성폭행을 시도한다.
최근 한샘, 현대카드, 대구은행 등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으로 여론은 후끈 달아올라 있다. 그나마라도 이렇게 목소리를 낸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우리 사회 이면에는 저임금과 상시적인 해고 위협에 시달리지만 당장의 생계가 곤란해 고발조차 못 한 채 눈물만 삼키는 비정규직 여성들이 적지 않다. 언론마저 성폭행'성추행 '사건' 자체에만 주목할 뿐 그 근본 원인을 파헤치고 해결책을 찾는 데는 무심하다.
2030 청년 여성들은 일상화된 위험과 불안, 차별에 노출된 채 살아간다. 이것은 비단 성폭력 문제뿐 아니다. 젊은 여성들은 고질적인 주거 빈곤에 노출돼 있다. 서울의 경우 여성 1인 가구 중 절반에 가까운 45%가 39세 이하를 차지한다. 대학이 많고 일자리 질이 낮은 대구의 상황도 서울과 별반 다를 바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저임금에 시달리는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보증금과 월세 부담이 덜한 험지나 우범지역의 연립'다세대 주택으로 내몰리고, 편안해야 할 집에서조차 매순간 크고 작은 공포감에 시달린다. "창문 염탐하는 남성 때문에 밤새 잠을 못 잤다"는 등 생생한 여성들의 경험담은 SNS에 차고 넘친다. 2030 여성 1인 가구의 10명 중 4명은 '주거지 불안을 느낀다'고 했다.
위험하게 살아가는 것도 서러운데 '쉬운 여자'라는 인식도 부담이다. 한때 SNS에는 '#이게_여성의_자취방이다'는 태그가 유행처럼 번져갔던 적이 있다. '자취방'을 주제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 화보집에 반발한 여성들이 실제 자취 중 범죄 경험담을 올리는 태그 운동을 벌인 것이다. 남성들은 '자취하는 여자'와 '잘 취하는 여자'가 이상형이라고 농담을 던지며 정작 최악의 결혼 상대로는 유학 경험(36%)에 이어 '자취녀'(25.8%)를 꼽는 이중적인 시선을 드러낸다.
남성에 비해 취업이 어렵기도 하지만, 취업해도 곧잘 경력단절로 이어지고, 같은 학력에도 남성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여성들이 많은 것도 문제다. 남녀고용평등법이 있어도 여전히 기업들의 여성 채용 기피 분위기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오죽하면 "죽으라 공부해봤자 결국 '남자'가 스펙"이라는 푸념이 나올까. 결국 경제적 문제는 여성들의 주거 불안 문제로 직결되고 성범죄로 이어지는 뫼비우스의 띠다.
하지만 이런 사회구조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2030 여성에 특화된 복지나 정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여성만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청년 정책'이거나, 대부분의 '여성 정책'은 기혼자를 대상으로 하고 일가정양립이나 보육 정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근로 능력을 갖고 있고, 아직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아 희망을 꿈꿔볼 수 있는 '청년'이라는 이유에서 2030 여성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아마 서두에 언급한 '계약결혼' 드라마의 결말은 알콩달콩 사랑으로 이어지는 해피엔딩일 것이다. 하지만 저임금과 주거 불안, 각종 범죄와 데이트 폭력에 노출된 현실 속 2030 여성들의 결말은 과연 해피엔딩일 수 있을까? 청년 여성들의 '해피엔딩'을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숙제가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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