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한숨이 절로 나오는 문 정부의 외교 미숙

청와대가 한미 정상회담 공동언론발표문이 나온 지 하루 만에 발표문 내용에 대한 동의 여부를 놓고 우왕좌왕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신뢰성에 대한 타격은 물론 "문 정부에 외교가 있기나 한가?"라는 비판을 자아내는 외교 미숙이다. 청와대는 8일 밤 공개된 발표문 내용 중 "한미 동맹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번영을 위한 핵심축'이란 내용에 대해 세 번이나 입장을 바꿨다.

처음에는 '인도'태평양 라인'에 '편입될 필요가 없다'(김현철 경제보좌관)고 했다가 논란이 일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리가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한 것으로, 동의하지 않는다'(청와대 관계자)로 바꿨다. 해당 내용은 트럼프 대통령의 희망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설명이 더 큰 논란을 부르자 청와대는 '더 협의가 필요하다'로 다시 수정했다.

이는 한미 정상회담 합의사항의 번복으로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정상회담 공동발표문 내용은 합의 또는 적어도 한쪽의 묵인이나 암묵적 지지를 깔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것이 외교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트럼프 대통령이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한 것이고 우리는 동의한 것이 아니다"고 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엄청난 외교적 실수다. 문재인 대통령이 발표문 내용에 동의하지 않았다면 트럼프의 바람임을 분명히 했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렇게 희망했지만 문 대통령의 생각은 다르다는 내용을 포함시켜야 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동의하지 않는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은 미국 정부에 '합의 번복'으로 비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 협의가 필요하다'는 설명 역시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월스트리저널이 비판한 대로 트럼프 행정부에 문 대통령은 '못 믿을 친구'(unreliable friend)로 각인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한심한 것은 '인도'태평양 라인'의 참여 여부를 놓고 문 정부 내에서 말이 엇갈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청와대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공동발표문 문안 교섭 실무를 맡았던 외교부는 다른 소리를 했다.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이 새로 제시한 (인도'태평양) 전략은 우리 정책 방향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2시간 만에 외교부 당국자는 "좀 더 협의가 필요하다고 판단돼 발표문에 미국 측 설명으로만 명시하기로 합의했다"고 입장을 바꿨다. 이쯤되면 문 정부에 외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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