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법률가 칼 빈딩과 정신과 의사이면서 교수였던 알프레드 호헤는 '살 가치가 없는 생명의 파괴를 허용하기'라는 제목의 소책자를 세상에 내놓았다. 호헤에 따르면 뇌손상이나 정신박약 같은 장애를 안고 있는 이들은 이미 '정신적으로 사망한 상태'이거나 '인간 존재의 공허한 껍데기'일 뿐이었다. 호헤는 이른바 '바보' 한 명을 부양하는 데 드는 연간 비용을 계산하여 국민 경제에 가해지는 부담을 추정하기도 했다.
이런 극단적인 주장이 등장하던 무렵, 독일 경제는 실로 처참한 상황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서 지불해야 할 막대한 배상금을 충당하고자 거의 무제한으로 돈을 찍어댄 결과, 초(超)인플레이션이 절망 속의 독일 사회를 휩쓸었다. 단돈 몇 마르크에 팔리던 감자 조각이 불과 몇 년 사이에 수억 마르크로 둔갑하는 상황에서 '살 가치가 없는 생명' 같은 주장이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딩과 호헤의 주장은 그저 하나의 주장에 그칠 뿐, 현실화되지는 못했다.
'살 가치가 없는 생명'(Lebensunwertes Leben)을 제거하라는 주장이 국가 정책으로 실현된 것은 1939년에 이르러서다. 이해 10월부터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물경 5천여 명에 이르는 장애 어린이들이 독극물이나 아사(餓死)의 형태로 살해당한다. 최소 8만에서 최대 20만 명에 이르는 성인 장애인들 또한 'T4 작전'(Aktion T4) 희생자가 되어 절멸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렇다면 1939년의 독일 경제는 어떤 상황이었던가? 1920년의 어이없는 주장이 현실로 바뀔 만큼 독일인들은 더욱 심각해진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었던가?
사실 1933년 나치의 집권에서부터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발발까지, 독일의 경제는 빠르게 활력을 되찾고 있었다. 국가 주도의 대규모 투자를 통해서 실업 문제가 거의 해소되었고, 독일 국민은 아우토반과 국민차(Volkswagen), 의료보험 같은 성장의 단물을 누리기 시작했다. 고기맛을 보면 빈대가 남아나지 않는다고 했던가. 궁하게 살던 시절에는 차마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생각이 궁핍에서 풍요로 자리를 옮겨가던 시기에 힘을 발휘한다. 가난의 고통 앞에서도 최소한의 품위는 잃지 않았던 사람들이 한 번 맛본 풍요의 유혹 앞에서 어이없이 허물어지고 만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생명 윤리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사건 둘이 벌어지고 있다. 코앞으로 다가온 연명의료결정법 전면 시행과 낙태죄 폐지 문제가 그것이다. 이 둘은 일견 무척이나 인도주의적인 외피를 쓰고 있다. 억지로 임종의 순간을 늘림으로써 환자와 그 가족의 고통이 의미 없이 연장되는 일을 막자는 것이 연명의료결정법의 취지이고,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고 원하지 않은 임신으로 인해 사회적,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일을 없애자는 것이 낙태죄 폐지를 청원하는 이들의 주장이다.
그런데 이 둘은 똑같은 유혹을 동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왕 죽을 사람에게 돈을 쓰고 싶지 않다는 이들과, 배 속의 태아 때문에 내가 누릴 것을 못 누리는 상황을 피하고 싶은 이들에게 연명의료결정법과 낙태죄 폐지는 좋은 핑곗거리가 된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기는 시점이 눈앞에 다가온 가운데, 누군가를 '살 가치가 없는 생명'으로 치부하고 그 생명을 제거함으로써 일신의 안녕과 안락을 추구하겠다는 유혹은 무시해도 될 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다. 부디 생명의 가치가 물질적 풍요와 안락의 유혹 앞에 무너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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