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로비치 라츠코프스키 교수(페테르부르그 대학 역사학과 석좌교수, 러시아혁명사)
-1917년 당시 임시정부의 수장이던 케렌스키 또한 10월 혁명을 부추긴 역할을 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당시 케렌스키는 코닐로프와 볼셰비키 사이에서 곡예를 했다. 케렌스키는 코닐로프를 통해 볼셰비키의 세를 약화시키려 했다. 그러나 코닐로프의 군사쿠데타 시도로 인해 임시정부는 양쪽을 다 잃었다.
-독일과 맺은 정전협정이 혁명 후 내전을 불러일으켰다는 주장도 있다.
▶독일과 맺은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은 러시아에 치명적인 손실을 안겨줬다. 러시아가 차지했던 유럽의 영토를 절반이나 잃었고 광대한 지하자원과 식량의 생산지를 잃어버렸다. 트로츠키조차도 사인하기를 머뭇거렸던 조약이었다. 조약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볼셰비키는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분노한 많은 병사들과 농민들이 반혁명군인 백군에 가담하기도 했다. 그러나 독일이 연합국에 패전하면서 맺은 베르사유조약에서 러시아가 잃었던 많은 부분을 다시 찾으면서 볼셰비키가 회생할 수 있었다.
-무명의 스탈린이 트로츠키와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원인은.
▶당의 지지를 얻기 위해 스탈린은 많은 술수를 썼다. 반면에 트로츠키는 자신의 이상만 고집하면서 당의 지지를 잃었다. 물론 트로츠키는 위대한 혁명가였지만 비현실적이었다.
-10월 혁명에 대한 견해는?
▶10월 혁명은 우리 러시아 역사에서 특별한 사건이었고 러시아를 위대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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