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한 미명의 시간, 새벽 공기를 가르며 하루를 여는 사람들이 있다. 새벽 일터로 나와 묵묵히 땀 흘리는 이들의 사연과 면면은 다양하다. 누군가 버린 쓰레기를 치우는 환경미화원, 일터로 향하는 이들의 발이 돼주는 버스 기사와 열차 기관사, 어느 때보다 활기찬 새벽 시장의 상인들, 꽉 막힌 출근길 교통정보를 전하는 리포터, 택배 물품을 싣고 내리는 물류센터 직원 등 2018년 새해를 맞아 어느 누구보다 일찍 새벽을 여는 사람들을 만나본다.
지난 5일 오전 2시 대구 달서구 감삼동 한 주택가. 우렁찬 엔진 소리가 골목길의 적막을 깼다. 김정출(51) 씨가 운전하는 쓰레기 수거차량이 골목길 앞에 서자 매달려 있던 환경미화원 전도현(46), 손성환(33) 씨가 부리나케 골목으로 뛰어들어갔다. 골목 안에는 쓰레기를 가득 담은 종량제 봉투가 곳곳에 쌓여 있었다.
전 씨와 손 씨는 '후후' 입김을 뿜으며 흩어져 있는 쓰레기봉투를 바쁘게 들어 날랐다. 차디찬 겨울 새벽바람 속에 외투도 입지 않았는데도 두 사람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때론 쓰레기봉투는 예상치 못한 흉기로 돌변한다. "덜 꺼진 연탄이나 깨진 유리, 화재 위험이 있는 배터리를 치울 때면 늘 신경이 곤두서요. 제가 다칠 수도 있고, 불이 나거나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 경력 4년의 전 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근무 3개월 차를 맞은 손 씨는 "첫 근무를 하던 날 아버지와 함께 쓰레기 수거차량에 탔다"고 했다. "아버지는 아들 고생하는 게 걱정된다고 밤잠도 잊은 채 출근길에 동행하셨어요. 쓰레기 수거도 도와주고 차량도 타면서 제 일을 직접 경험하시는 모습이 정말 고맙고 죄송했죠. 아버지를 떠올리면 가슴 속에 뜨거운 게 느껴집니다."
전 씨는 "밤낮이 바뀐 탓에 가족들을 자주 볼 수 없는 게 아쉽다"고 했다. 등굣길에 나선 딸과 거리에서 마주치는 경우도 많다. "딸과 가볍게 손인사를 하는데 항상 웃으며 반겨줘서 고마울 때가 많아요."
늘 같은 동네를 돌다 보니 주민들과 거리도 가까워졌다. 김정출 씨는 "동네 중국음식점 사장님은 매일 아침 가게 문을 열고 우리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음료수를 건네준다"면서 "주민들이 따뜻하게 격려해줄 때 정말 힘이 난다"고 했다. 쓰레기 수거는 오전 10시 대구시 환경자원사업소에 도착해야 끝이 난다.
같은 날 오전 5시 30분. 달서구 대곡동 한 아파트단지 앞에서 10년 경력의 환경미화원 김선자(51'여) 씨가 빗질을 하고 있었다. 큰 쓰레기를 집게로 줍고, 빗질을 하니 훅 먼지가 피어오른다. 쓰레기를 담는 포대에는 담배꽁초, 래커 통, 빈 약병, 목장갑 등 온갖 쓰레기가 들어차 있었다. 플라스틱 빗자루로 쓰레기를 모으던 그가 어깨를 풀며 "이제 나이는 못 속이겠다"고 웃었다. 빗질에 여념이 없는 김 씨 옆으로 차량 한 대가 아슬아슬 스쳐 지나갔다.
도로를 청소하는 환경미화원은 항상 교통사고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차도와 인도를 구분하는 황색선은 환경미화원들에게 최소한의 안전선이다. "우리는 이 선을 '생명선'이라고 생각해요. 여길 넘어가지 않아야 그나마 사고 위험을 줄일 수 있어요. 하지만 청소에 열중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도로로 나갈 때가 있는데, 정말 아찔하죠." 실제로 지난 2015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전국적으로 27명의 환경미화원이 숨졌고, 766명이 근무 도중 다쳤다.
세 아이의 엄마로 평범한 전업주부였던 김 씨는 지난 2008년 재수 끝에 환경미화원이 됐다. 청소년 시절 핸드볼 국가대표를 꿈꿨을 만큼 또래 여성들보다 힘이 세고 체격도 좋아 별명이 '킹콩 아줌마'다. 강인한 체력의 김 씨도 사람들의 편견 앞에선 속절없이 무너진다. "하루는 분리배출해야 하는 쓰레기를 종량제봉투에 잔뜩 담아 내놓았기에 따로 버리셔야 한다고 말씀드렸더니 '당신이 뭔데 날 가르치느냐'고 쏘아붙이더군요. 왜 이런 수모까지 당해야 하나 싶어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오전 8시. 150m의 거리를 청소하고 대형 포대 5개를 가득 채운 그가 '후유'하고 큰 숨을 내쉬었다. "힘들다고 불평할 시간도 없어요. 할 일이 더 많거든요." 근처 식당에서 떡국 한 그릇을 비운 김 씨는 얼른 자리를 털고 나와 다음 장소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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