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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영의 근대문학] 김우진의 '난파'와 자살 권하는 사회

김우진
김우진

누군가 자살할 때에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없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 예를 들면 우연하게 일어난 사건이 누군가의 내면에 위태롭게 묻혀 있던 심리적 상처를 건드려 그 상처가 순식간에 폭발해서 자살이라는 치명적 상황에 이를 수도 있다. 적어도 일제강점기 천재적 극작가 김우진은 그랬다. 1926년 8월 4일 김우진은 '사의 찬미'로 유명한 성악가 윤심덕과 함께 현해탄을 건너는 배에서 투신자살한다. 그의 나이 서른을 앞두고 있던 때였다.

엘리트 유부남과 미모의 신여성 간의 정사(情死)라는 점에서 당시 언론은 김우진과 윤심덕의 자살을 사랑의 절망에 따른 낭만적 죽음으로 만들어갔다. 그러나 동반자살에 이르기 전부터 김우진은 윤심덕의 그악스러운 성격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여기에 목포 부호로서 집안의 사업을 물려받기를 바란 완고한 아버지 때문에 상당한 심적 고통을 겪고 있었다. 김우진이 자살 석 달 전 발표한 자전적 희곡 '난파'(難破'1926)는 자살에 이른 그의 복잡한 내면을 읽을 수 있는 자료가 된다.

'난파'는 시인, 시인의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비비라는 이름의 여성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3막 2장의 희곡이다. 희곡 속 시인은 보험통계나 양도증서 등 이재에는 관심 없이 과거에 연연하며, 꿈을 찾는 인물이다. 이처럼 연약하고 섬세한 성향이 있는 시인의 한쪽에서는 아버지가 '신라 성족의 후예', 그리고 자랑스러운 아들의 역할을 철저하게 완수하라고 몰아붙이고 또 한쪽에서는 비비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햇살처럼 빛나고 멋지게 살 것을 권유한다.

시인은 이 두 사람 사이에서 "인생이 군두(그네) 뛰는 것인 줄 알고 싶"다, "한 번 더 알고 싶"다면서 삶의 다양한 국면을 주체적으로 경험하고 싶다는 열망을 강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1920년대 전근대적 조선 현실 속에서 그 열망은 실현되지 못한 채 좌초되어 버린다. 시인의 삶을 난파시킨 것이 무엇인지 쉽게 규정할 수 없다. 고루한 인습, 불륜의 사랑, 시대에 맞지 않은 열망,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뒤섞여서 삶의 난파라는 파국적 상황으로 시인을 이끌고 간 것일지도 모른다. 시인처럼 김우진 역시 시대와 맞지 않는 열정과 열망을 지녔고, 사회가 용인하지 않는 사랑을 했지만, 아버지의 아들로 사는 것을 거부할 용기도 없었고 어렵게 선택한 사랑은 그를 지치게 했다. 그 속에서 김우진의 삶 또한 방향을 잃고 파국을 향해 갔다.

한국은 수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이어가고 있다. 이 중에는 청소년 자살이 만만치 않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100여 년 전 조선의 젊은이는 시대에 맞서다 좌절해서 죽음을 선택했지만, 현재 한국의 젊은이들은 무엇 때문에 자살이라는 자기 파괴적 선택을 하는 것일까. 대학 진학에서도, 취업에서도 생활 안정이 최고 목표가 되는 '안정' 위주의 대한민국이다. 이처럼 우리의 대한민국은 젊은이 스스로 길을 찾게 하기보다 안전하게 가야 할 길을 앞서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은 왜 자살을 권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것일까. 다시 한 번 살펴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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