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동양 문화의 앞날

인류 문명은 움막집에서 살아온 선사시대와 조금씩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중국의 하, 은, 주나라를 거치며 이어져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조선부터 오늘날까지 기록을 가진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는 생각은 비슷했지만, 문화권에 따라 그리스 근처에서는 인간의 사고를 현실에 맞게, 현실을 더 좋게 하는 방향으로 흘렀다. 동양에서는 좋은 삶을 위해서는 어짐(仁)이나 자비(慈悲)를 강조하는, 주로 정신적인 수양이나 높은 인격 수준을 주장하였다. 동양에서는 불교나 도교, 유교가 사회를 지배하면서 15세기까지 흘러왔다.

서양의 흐름은 기독교가 희랍의 정신세계 경향에 편승하여 세상에 널리 퍼짐에 따라, 점차 자연과학과 현실을 위해 조직적인 시스템에 박차를 가해 왔다.

그래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뉴턴의 만유인력, 대포의 발명, 아시아 침범, 기계의 조립, 핵폭탄의 발견 등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인간 개인의 자유와 안전, 남녀의 평등, 영어의 세계어화가 이루어졌고, 왕조시대의 백성은 국민, 시민, 인민으로 쪼개어져서 개인 우선으로 분산되었다.

동양에서는 더 좋은 사회를 이루기 위한 논란이 많았다. 조그마한 국가로 나뉘어 있던 춘추시대에는 많은 똑똑한 자가 나타났다. 어떤 자는 어질게 정치하라(공자), 또 어떤 이는 아들이 아버지를 위하듯 하는 사회보다는 모두가 서로 사랑하라(묵자), 외교가 중요하다(종횡가), 법을 만들어서 통치하라(한비자) 등의 주장이 많았다.

그러다가 법을 중심으로 하는 진(秦)나라, 한(漢)나라로 통일이 되었다. 진나라는 행정권을 중앙집권 시스템으로 하고, 화폐를 통일하고, 글자를 한자로 통일하였다. 어렵게 중국을 통일했으나 얼마 가지 못하고 분열되었다가 다시 한나라로 통일되었다.

그 후 여러 나라를 거치다가 만주족에 의한 청나라가 성립되고는 중국 원래의 문화를 억압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아편전쟁 이래로 외국으로부터 침범당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막강하다고 소문난 해군력이 화살을 아무리 쏘아대어도, 대포로 무장한 외국 군대에게는 이길 수 없었다.

이후 먼저,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이 한국을 합병하고, 중국을 침략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똑똑한 사람들은 유교를 원망했다. 유교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면서 유교 책을 없애버렸다. 그리고 대개혁을 일으켰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발전에 뒤졌던 동양은 서양 따라잡기에 혈안이 되었다. 일류 학교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사교육이 성행하였다. 우선 개인의 생활이 좋아야 하고, 그것이 모이면, 나라의 발전이 이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루어 내었다.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는 이제 4마리용이란다.

어느 정도 따라잡고 보니까, 이젠 서양 문명 속에도 많은 모순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랑하라면서 남의 나라를 침범한다든지, 아메리카 대륙을 침입하면서, 주민들을 괴롭히고 죽인 것 등은 그 문화의 단점임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지역 단위로 세계가 뭉쳐지고, 제국주의는 불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이제는 '사랑하라, 그렇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 '발전하라, 그렇지 않으면 지배하겠다'는 논리로 접근할 수는 없다.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통하지 않을 때는 슬픔을 머금고 바라보는 자색(紫色)의 시선, 약한 상대를 어질게 바라보는 자비와 어짐(仁)의 태도가 진정 필요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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