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每日 칼럼] 밀양의 아픔에서 끝내자

침대에 결박된 채 힘 한번 못 써보고 쓰러져 간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작동이 안 되는 인공호흡기를 차고 대신 시커먼 연기를 들이켜며 먼 길을 가신 어르신들. 교통사고로 거동을 못하신 이웃 할아버지. 가슴이 얼어붙는다. 분통이 터지지만 화를 당하신 분들께 드릴 말씀조차 없다.

정부의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를 시험이라도 하듯 경남 밀양에 화마(火魔)가 덮쳤다. 26일 오전 밀양 세종병원 화재로 38명이 숨지고, 150여 명이 부상했다. 세월호 참사를 의식해 '안전한 대한민국'을 주요 국정과제로 공약한 문재인 정부의 안전대책 발표 후 3일 만의 화재 참사다.

지난해 12월 21일 충북 제천의 스포츠센터 화재로 29명이 숨지고, 36명이 다친 지 불과 한 달여 만이어서 국민들의 충격이 더하다. 지난해 12월 20일 서울 종로 여관 화재로 6명이 숨진 것까지 더해 한 달 만에 3건의 대형화재로 73명이 운명을 달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새해에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 국민안전을 정부의 핵심 국정 목표로 삼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같은 정부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화마와 재난은 국민의식과 한국의 재난시스템에 대해 '릴레이 시험'을 치르게 하듯 우리에게 시련을 주고 있다.

재난 전문가들은 현재의 국민의식과 재난시스템으로는 대형 화재 참사가 언제든지 되풀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제2, 제3의 제천'밀양 참사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잇따르는 화재 참사는 대한민국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이 빚은 결과다. 화재 등 재난에 대한 무감각한 국민의식, 안전시스템과 제도의 불비, 민생보다는 쌈박질에만 몰두하는 정치권의 무능이 뒤섞인 '인재'(人災)인 것이다.

재난과 안전문제에 있어 완벽한 대책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같은 재난이라도 대응 능력에 따라 피해 규모가 크게 달라진다. 1차적인 준비와 대응은 국민들의 몫이다. 일부 건축주나 사업자들 사이에 법규를 무시한 불법 증'개축이 만연하고 경비를 줄이려 안전관리자를 두지 않거나 소방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비상시를 대비한 대피 훈련은 어느 누구도 시행하지 않고 있다. 소방당국과 연계한 교육훈련이 절실한 이유다.

밀양 세종병원의 정확한 화재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제도와 시스템'의 문제로 볼 만한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 병원에는 기본적 소방시설인 스프링클러가 없었다. 2014년 5월 전남 장성의 요양병원 화재로 21명이 숨진 이후 신규 요양병원은 스프링클러, 자동화재탐지기 등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했다. 기존 요양병원도 올해 6월 30일까지 이런 설비를 갖춰야 한다. 세종병원 별관의 요양병원은 시한을 5개월가량 앞둔 지금까지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았다. 또 방화벽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법규를 어긴 건 아니지만, 소방안전관리가 부실했다. 중소 병원에서 이번 같은 참사를 막으려면 관련 법규를 개정해 꼭 필요한 시설을 의무적으로 갖추게 해야 한다. 환자와 의료진의 생명이 걸린 문제인 만큼 비용 부담이 핑곗거리가 될 수는 없다.

또 중환자 비상대피시설이나 이송 매뉴얼 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도 인명피해를 키운 원인이다. 작년 말 기준으로 1천500여 개인 요양병원은 대부분 혼자 이동하기 어려운 환자들이 있어서 큰 인명피해가 날 위험을 안고 있다.

정치권도 '남 탓 공방'만 할 게 아니라 제도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 자동화재탐지설비 설치를 의무화한 법안은 2016년 6월에 발의됐지만 아직도 심의 중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지역 간 소방 인프라 격차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담은 법안 등도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완전히, 구조적으로 바꿔야 한다. 방치하면 비극이 되풀이 된다." 제천 화재 참사 대책위 가족들의 말이 가슴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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