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난치성 근육병 박정훈 씨

할머니 도움 없이 꼼짝도 못하고 누워 지내…돌 지났을 때 근육병 진단, 5년 전 수술 할머니도 불편

난치난치성 근육병으로 투병 중인 박정훈 씨를 할머니 이점순 씨가 돌보고 있다. 박 씨가 양손 엄지와 검지 정도만 움직일 수 있어 허리가 불편한 할머니는 간병하는 데 힘에 부친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난치난치성 근육병으로 투병 중인 박정훈 씨를 할머니 이점순 씨가 돌보고 있다. 박 씨가 양손 엄지와 검지 정도만 움직일 수 있어 허리가 불편한 할머니는 간병하는 데 힘에 부친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박정훈(가명'20) 씨의 허리는 젖혀진 채 굳어 있었다. 정훈 씨가 머리 아래로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신체 부위는 양손 엄지손가락과 검지뿐이었다. 팔이나 손목을 쓰지 못하니 손가락의 움직임도 자유롭지 않다. 난치성 근육병을 앓고 있는 정훈 씨는 스무 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바짝 말랐다.

◆온종일 누워지내지만 외국어 공부가 취미

정훈 씨는 돌이 갓 지났을 때 난치성 근육병 진단을 받았다. 전신의 근육이 점점 약해져 결국 움직일 수 없게 되는 병이다. 정부지원 활동보조사가 있지만 한 달에 200시간만 가능하고, 하루 중 절반 이상은 할머니의 이점순(가명'80) 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할머니는 밤마다 정훈 씨 옆에 잠자리를 마련하고 수시로 자세를 고쳐준다. 하지만 허리가 불편한 할머니는 팔이나 다리를 조금 옮겨주는 정도다. 정훈 씨는 밤새 불편해도 보채지 않고 활동보조사가 오는 아침까지 기다린다. 식사량을 줄여 대변은 목요일에 한 번만 본다.

할머니는 정훈 씨의 누나까지 두 사람을 키우면서도 손자를 낫게 하려고 온 힘을 쏟았다. 할머니 이 씨는 "정훈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떻게든 낫게 해주려고 서울의 대학병원과 용하다는 한의원을 반년 가까이 전전했다"며 "고칠 수 없으니 집에 가라던 의사들의 가슴을 치면서 울기도 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정훈 씨는 온종일 누워 지낸다. 외출을 하는 건 1년에 두 번, 병역과 활동보조인 신청 관련 서류를 발급받으러 병원에 갈 때뿐이다. 정훈 씨에게 문밖 세상의 풍경은 이미 기억 속에서 희미하다. 그래도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는 까치발로나마 걸어다녔고, 중학생 때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혼자 힘으로 통학도 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휠체어에도 앉을 수 없게 됐다. 고등학교 교육 과정은 1주일에 두 차례 가정방문 수업으로 이수했고, 다음 달 졸업을 앞두고 있다. 정훈 씨의 유일한 친구는 TV다. "다큐멘터리를 좋아해서 어렸을 때는 다큐멘터리 관련 일을 하고 싶었어요. 요즘도 EBS 다큐멘터리 필름 페스티벌을 챙겨봐요. 지금은 힘들어진 꿈이지만 태블릿 PC로 자연이나 외국어를 공부하는 게 좋아요."

◆아픈 할머니와 의젓한 누나

정훈 씨를 평생 돌봐준 할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다. 5년 전 척추질환으로 수술을 받은 할머니는 여전히 거동이 불편하다. 허리 통증 때문에 설거지를 할 때면 팔꿈치로 싱크대에 몸을 기대야 한다. 밤에는 뜬눈으로 새우는 날도 많다. 병원에서는 재수술을 권하지만 500만원이 넘는 수술비에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틀에 한 번씩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심한 날에는 동네 병원에서 진통제 주사를 맞는다.

정훈 씨의 엄마는 근육병 진단이 나온 후 집을 나갔다. 예순이 넘은 아버지도 1년에 두 번 정도 집에 오는 게 전부다. 할머니 이 씨는 "정훈이 때문에 울기도 많이 울었다"면서 "내 몸이 아픈 것보다 이제 내가 정훈이 곁에 있을 날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정훈 씨의 누나 나연(가명'22) 씨는 동생의 수호천사다. 나연 씨는 지역 한 전문대에서 치위생사 공부를 하고 있다. 나연 씨는 아픈 동생과 할머니를 위해 학교 수업 등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동생 곁을 늘 지킨다. 교통비를 아끼려 1시간을 걸어 통학하지만 집에 오는 길엔 늘 동생이 좋아하는 과자나 빵 등을 챙긴다. 외출을 하지 못하는 동생에게 밖에서 있었던 일들을 전해주는 다정한 말벗이기도 하다. 정훈 씨네 수입은 기초생활수급비와 의료급여 등 100만원이 전부다. 월세 10만원을 내야 하고, 대출받은 보증금 2천만원도 갚아야 해 생활은 항상 빠듯하다.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항상 가슴에 담고 있어요. 어떻게든 가족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할 생각이에요."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매일신문사'입니다. 이웃사랑 기부금 영수증 관련 문의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대구지역본부(053-756-9799)에서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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