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권 책 속의 좀벌레가 되고 싶다.'
얼마나 책을 좋아했으면 종이를 파먹는 좀벌레가 되고 싶었을까. 신분 차별로 숨 막히는 조선을 벗어나 새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혁명가' 홍길동이 주인공인 한글 소설 '홍길동전'을 탄생시키고 400년 전(1618년) 한양 저잣거리에서 역모죄로 삶을 마친 허균의 바람이었다.
책을 좋아한 조선의 인물로 이의준도 있다. 그는 중국인이 쓴 '옥해'(玉海)라는 200권짜리 전질 책을 무척 아꼈다. 아예 손에서 놓지 않았다. 황해도 관찰사 때, 밤에 관아 불로 뛰쳐나오다 두고 온 '옥해'를 가지러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불길에 뛰어들어 질식해 죽은 사연을 남겼다.
조선의 글깨나 하는 인물이 한자 책을 찾을 때, 한자 문맹(文盲) 백성에게 책과 독서는 그림의 떡이었다. 한글로 된 소설 등의 책이 없지 않았지만 쉽게 구해 읽기는 여전히 어려웠다. 나라는 물론, 힘 있는 사람들이 이런 백성이 보다 쉽게 읽을 책을 펴내 보급하지 않은 탓이다.
조선은 이렇게 독서층이 딱 갈렸다. 한문 책 읽기로 지식과 정보를 독점하려는 부류와 한글에 기대 소통하고 지식과 정보를 더듬어 세상을 알아가려는 서민의 '2중 언어' 사회였던 셈이다. 이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고도 400년 지나 조선이 문을 닫을 즈음까지 계속됐다.
이런 현상을 19세기부터 이국(異國) 선교사들이 본격적으로 깨기 시작했다. 성경 등 각종 한글 인쇄물을 무료나 싼값에 제공해 기막힌 효과를 거뒀다. 세상 밖 정보와 지식을 갈망하던 백성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서민은 열광했고 돈이나 책 등을 바꿀 쌀 같은 현물을 들고 줄을 섰다.
한때 한글 성경 간략본 보급이 중국어, 영어에 이어 세계 3위였다. 신약'구약성경 등을 합치면 중국어, 영어, 독어, 불어에 이어 세계 5위였다는 연구 자료도 있다. '아무리 많은 책을 출판한다고 해도 조선인들은 많은 분량을 다 사고도 더 많은 책을 달라고 한다'는 기록도 있다.
일제강점기 문맹 정책으로 힘들기도 했지만 높은 독서 관심과 뜨거운 교육열은 나라 발전의 바탕이 됐다. 그러나 세상 일은 변하듯 독서도 변했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2017년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 지난 1년간 일반 도서를 1권이라도 읽은 사람의 비율(독서율)이 성인 59.9%, 학생 91.7%로 1994년 첫 조사 이후 역대 최저치다. 반면 전자책 독서율은 높아졌다. 바뀐 독서 모습이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이제부터는 전자책과도 친할 때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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