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항의 남자 화장실 소변기 안에는 파리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파리 한 마리의 효과는 뜻밖에 강력하다. 파리 한 마리를 그린 이후 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의 양이 80%나 준 것이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남자들이 자연스레 파리 한 마리를 정조준한 결과다.
자동차회사 '폭스바겐'은 스웨덴 스톡홀름 지하철역에서 '피아노 계단' 캠페인을 진행했다. 피아노 건반 모양의 계단을 밟을 때마다 여러 높낮이의 음이 나오는 장치를 도입했다. 피아노 계단 역시 놀라운 효과를 냈다. 피아노 계단을 이용하라거나 장치를 설명하는 어떤 공지도 내걸지 않았지만 바로 옆 에스컬레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이 66%나 증가했다.
암스테르담 파리 그림과 스톡홀름 피아노 계단은 이른바 '넛지'(Nudge) 이론을 설명할 때 종종 등장하는 사례다. 사전적 의미로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위를 환기시키다'라는 뜻의 넛지는 행동경제학 용어로 훨씬 유명하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와 법률가 캐스 선스타인은 지난 2009년 함께 펴낸 동명의 책에서 '사람들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고 넛지를 새롭게 정의했다.
행동경제학에서 '넛지'는 '강압'과 '지나친 규제'를 경계한다.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거나 명령하지 않고도 사람들의 행동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정책이나 기업 마케팅 측면에서 지나친 규제에 따른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다.
이즈음에서 국내 부동산시장으로 화제를 돌려보자. 우리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는 '넛지'가 없다. 오로지 '규제'가 있을 뿐이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언하며 지난해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대출 제한,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부활 등 역대 가장 강력한 규제책만 쏟아내고 있다.
문제는 규제 일변도의 정부 정책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투기꾼으로 낙인찍은 다주택자들이 지방 보유주택을 처분하는 대신 미래가치가 높은 서울 강남권의 '똘똘한 한 채'에 집중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 결과 지난해 지방 집값은 침체일로에 빠진 반면 강남을 필두로 한 서울 집값은 사상 유례없는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투기 또는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한 서울 전역과 과천시, 세종시, 성남시 분당구 등 수도권 집값은 규제 적용 이후 오히려 오름세가 더 가팔라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다.
이제 정부가 부동산 정책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고민할 때가 왔다. 반드시 잡고 말겠다는 아집만으로는 부동산시장을 바로잡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규제 일변도 정책을 쏟아내고도 결국 강남 집값 상승만 부추긴 참여정부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당장 일선 공인중개업소 사이에서는 '이번에도 기다리면 이긴다', '다음 정부 땐 분위기가 바뀐다' 등 정부 부동산 정책을 조롱하는 목소리가 공공연하게 들린다.
공익을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규제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본래의 목적과 반대의 결과를 발생시키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당장 '최저임금'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노동자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최저임금 제도가 시장에서는 정반대로 작용하고 있다.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오히려 노동자들을 궁지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21세기 경제 현상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정치, 사회문제뿐 아니라 소비자 심리 등 다양한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 결코 규제로만 풀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규제의 환상에서 벗어나 규제의 역효과와 부작용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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