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인규 전 대구은행장 겸 DGB 금융그룹 회장이 여론의 반발을 수용, 회장직에서도 전격 사퇴하면서 대구은행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만신창이가 됐던 은행이 다시 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은 것은 다행이다. 대구은행의 환골탈태를 바랐던 은행 구성원들과 지역민들은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동시에 지배구조 개편과 후임자 선출에 따른 파장이 얼마나 클지에 기대와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현재 거론되는 지배구조 개편 문제가 거창한 것 같지만 결국 후임자 선출 방식으로 귀결된다. CEO에게 지주회장과 은행장을 동시에 맡길 것인지, 아니면 분리할 것인지의 문제다. 금융지주사 체제를 운용하는 곳 중 회장과 은행장이 통합된 곳은 DGB금융지주뿐이다. 금융당국도 분리를 선호한다. 거기다가 전 회장의 비자금 조성이 제왕적 회장 체제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사람들은 회장'은행장 분리론에 동조한다.
그러나 회장과 은행장을 분리한 금융지주사들과 달리 DGB는 은행의 비중이 90% 이상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재 국내 은행권 운영체제를 볼 때 금융지주제에서는 회장의 권한이 절대적이고 은행장의 역할은 극히 제한적이다. 과거 단일 은행으로 치면 행장과 수석부행장 정도의 구조로 이해하면 된다. 이런 상황에서 회장과 은행장을 분리하면 규모가 작은 DGB의 경우 두 사람 간의 갈등이 발생할 소지가 크다. 조직을 화합시키려고 만든 구도가 자칫 더 큰 분쟁을 나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안의 본질은 회장에 어떤 인물을 앉힐 것인가다. 일부에선 회장과 은행장을 분리한 뒤 은행장은 내부를 잘 아는 DGB 출신이 맡되, 회장은 현 정권과 교감하는 인물을 서울에서 모셔오자는 주장을 한다. 낙하산을 자청하는 구조다. 부산의 BNK가 그렇게 했으니 DGB라고 못할 게 없다는 것이다. BNK 회장 경우 지난해 9월, 선임을 앞두고 부산은행은 물론 부산 경제계, 시민사회단체까지 나서서 반대했던 인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동문으로, 현 정권과 교감할 수 있는 부산 출신의 대표적 금융인이라는 점 때문에 결국 반발이 무마됐다. 은행은 물론 부산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DGB는 상황이 다르다. 대체 재경 대구경북 출신 어느 금융인이 현 정권 핵심과 연결돼 있다는 말인가. 서울에서 파악한 바로는 핵심은커녕 주변인이라도 연결고리를 갖고 있는 사람이 없다. 있지도 않은 인물을 어떻게 만들어서 모셔오자는 주장인지 모르지만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특정 조직이나 지역의 순혈주의가 동종교배를 초래해서 결국 둥지를 망치고 만다는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대구은행의 경우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전'현직 임원들이 있다. 회장 권한대행과 은행장 권한대행을 맡은 김경룡'박명흠 등기임원, 차기 유력주자로 부상했다가 지난 연말 부당하게 내쳐진 노성석'성무용'임환오 전 등기임원, 경영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생명'캐피탈'신용정보'유페이 등 자회사 사장단의 면면에서 은행의 미래를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은행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으니 이들을 제쳐두고 외부 인사를 모셔 와서 역할을 맡겨보자는 발상은 지나치게 유아적이다. 은행은 안중에도 없고 본인들의 이해득실로만 판단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크다.
그런 의미에서 DGB금융지주 사외이사 5명의 역할은 엄중하다. 조해녕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전 대구시장), 하종화 세무법인두리회장(전 대구국세청장), 이담 대구변호사회 회장, 서인덕 영남대 명예교수, 전경태 계명대 명예교수 등인데, 이들로 임원추천위원회가 구성된다. 임원추천위원회는 회장뿐만 아니라 은행장도 사실상 결정하는 기구다. 심정지 상태였던 은행에 심폐소생과 수술을 하는 역할이 동시에 맡겨졌다. 지역민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사외이사들이 어떤 결정을 하는지에 대구은행과 지역 경제의 미래가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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