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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륵에서 박태준까지 대구, 1,500년 음악사…『대구의 전통음악과 근대음악』

손태룡 음악문헌학회장이 자신의 저서
손태룡 음악문헌학회장이 자신의 저서 '대구의 전통음악과 근대음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채근 선임기자 mincho@msnet.co.kr

대구의 전통음악과 근대음악/ 손태룡 지음/ 영남대출판부 펴냄

대구에서 음악의 출발은 언제부터일까? 물론 음악이 인류 역사의 출발과 함께했으니 구석기, 신석기시대까지 소급될 수도 있겠다. 음악문헌학회 손태룡 회장은 대구 음악의 기원을 삼한시대까지 소급하고 있다. 이 시기를 고대국가의 태동기라고 본다면 국가 차원의 제천(祭天)의식이나 축제가 나타난 시점을 음악의 출발로 해석한 것이다.

이렇게 싹을 틔운 대구의 음악은 가야의 우륵을 만나 '현(絃)의 미학'을 꽃피웠고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서는 향가(鄕歌)라는 독창적 장르까지 만들어냈다. 이 책은 대구에서 음악이 어떻게 형성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왔는가를 다각적으로 살피고 있다. 좁게 보면 '대구의 음악사'이지만 넓게 보면 '대구의 인문학 도서'로 봐도 충분할 듯하다. 우륵에서 박태준에 이르는 대구의 1천500년 음악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고대 삼한시대부터 음악 전통 이어와

이 책은 대구지역의 한국음악사와 서양음악사를 함께 다루고 있다. 근대 이후 대구 국악이 어떻게 형성되고 양악이 언제, 어떻게 도입돼 지금까지 이어져 왔는가를 밝혔다.

삼한의 옛 영토 중 하나였던 대구는 일찍이 음악의 '감도'(感度)가 높았던 도시였다. '밤늦도록 술 마시며 놀았다'는 삼국지위지동이전의 기록이 이 시기임을 볼 때 고대 경상도 지역에서도 무천(舞天), 영고(迎鼓) 같은 제의, 축제가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1601년 경상감영이 설치되고 대구가 영남의 거점도시로 부상하면서 지역의 음악 문화도 수준과 격(格)을 높여갔다.

1827년 양악이 유입되면서 1910년대부터는 전문 음악인이 배출되었고, 음악 단체들이 활발히 음악 활동을 전개하며 근대음악 도시로서의 기반을 구축했다. 미술, 문학, 무용 같은 종합예술도 이런 환경에서 발전을 거듭했다. 저자는 튼튼한 이론적 기초 외 각 장르마다 사진, 도표를 실어 독자들이 흥미롭게 대구의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기생·명창·권번 등 전통음악 탐색

대구 음악의 첫 장을 여는 제1부는 대구 전통음악 총론 성격을 띠고 있다. 1장에서는 진한과 변진의 음악 상황, 가야국과 신라의 음악, 통일신라의 공연 활동을 다루었다. 고대 경상도 음악 문화를 대표한 대가야의 가야금이 신라에 흡수됨으로써 영남의 음악은 한층 폭넓고 차원 높게 발전해 갔다. 가야를 병합한 신라는 포괄적인 음악 문화를 형성하며 '향가'라는 특색 있는 장르를 개척하기도 했다.

이후 고려, 조선시대 수도가 개성과 서울로 옮겨졌지만 경상도에서 음악의 발전은 계속되었다. 수도를 서라벌(경주)에 두었던 통일신라의 문화 전통이 그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대구의 음악을 살피기 시작하는 2장에서는 기생조합 및 권번, 향기(鄕妓)의 역사적 흐름, 일제강점기 기생 단체들을 살피고 있다. 이어 3장에서는 배설향, 이화중선, 박록주 등 영남에서 동편제의 맥을 이어간 지역의 '여류 명창'을 다룬다. 또 '대구아리랑'을 음반으로 취입한 최계란을 통해 음악 창작 도시로서의 대구 전통을 확인하고 있다.

◆악보에 녹아든 대구의 애국·민족정신=2부, 3부에서는 본격적으로 대구의 근대음악에 대해 다루고 있다. 1900년 사문진에 최초로 피아노가 들어오는 과정부터 관악기 등장, 대구 최초의 악대 활동에 대해서도 살핀다. '근대음악 총론'에서는 독자들이 한눈에 사료를 읽어 내려갈 수 있게 연대순으로 자료들을 정리했다.

저자는 근대화 초기 대구지역 서양음악은 매우 역동적이었다고 강조한다. 혼성합창의 창시자 박태원, 한국인 최초 바리톤 김문보, 영남지역 최초의 소프라노 추애경, 작곡과 합창운동의 선구자 박태준, 한국 양악사의 큰 별 현제명, 독일 가곡의 파종자 권태호, 사랑과 생명을 위한 바리톤 이점희, 피아노 음악계의 대모 이경희 등이 초창기 대구 음악을 활발하게 이끌어가며 활력을 불어넣었다.

제3부 '대구음악 탐구'에서는 모두 13편의 논문을 실었다. '예술사 기술 방법론'부터 '영남음악가의 유성기음반 고찰' '대구지역 요정의 맥(脈)' '일제강점기 대구지역의 음악 활동'까지 그동안 저자가 학계나 언론사에 투고, 기고했던 자료들을 모았다.

저자는 700쪽이 넘는 방대한 자료를 동원해 대구의 음악을 정리했지만 모든 작업은 '대구 정신'으로 귀결된다고 말한다. 모든 격동기 지역의 시대정신이 음악에 투영됐기 때문이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 대구 10월 항쟁, 2·28 민주학생운동은 근대 여명기 대구의 정서를 관통해온 역사적 사건들입니다. 당시 음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구의 애국, 민족정신이 음표로, 악보로 생생하게 녹아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767쪽, 3만5천원.

◆손태룡(孫泰龍)=1975년 영남대 기악과를 졸업한 후 연세대 대학원에서 음악교육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국음악사에 관심을 가져 영남대 대학원에서 한국음악학 과정을 마쳤다. 지금까지 총 28권의 음악학 전문연구서를 정식으로 출간했고, 200여 편의 음악사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현재는 음악문헌학회 일을 맡고 있으며, 음악사와 관련한 기고와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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