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와대 통신] 사주경계(四周警戒)

"강력부 검사 시절, 깡패 등 강력범들을 워낙 많이 잡아들여 내 신변에 대해 엄청난 위협감을 느끼고 살아왔다. 대규모로 잡아들일 때는 하루에 42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집행한 적도 있다. 40여 명을 한꺼번에 붙들기가 어렵다. 한 장소에 모이게 하여 모조리 체포했다. 내 아들이 놀러다녔던 이웃집의 범죄단 두목도 구속시켜 유죄판결을 받아냈다. 이런 과정에서 검사인 나라고 해서 겁이 안 나겠나? 그 이후부터 습관이 생겼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사주경계를 하는 것이다. 위협 요인이 없나 살피고, 또 살피면서 살았다."

최근 만났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이런 말을 했다. 자기 관리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제1야당 대표가 된 이후에도 집요하게 자신의 뒤를 밟는 시도가 있다고 했다. 경남도지사 시절 자신의 과거를 전방위로 캐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도지사를 할 때 외부 사람과 점심·저녁밥을 안 먹었다. 낮에 도청 공무원들하고 칼국수·보리밥만 먹고, 저녁에는 집에 가서 아내와 식사했다." 홍 대표는 "내 뒤를 아무리 캐고 다녀도 헛수고일 뿐"이라고 했다.

지난해 대선에서 홍 대표를 큰 표 차로 누르고 청와대로 왔던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대통령의 사적 생활과 공적 생활을 분리한다는 선언을 했다. 공식 행사를 제외한 가족의 식사 비용, 치약'칫솔 등 사적 비품 구입 등 가족 생활비는 대통령의 월급에서 충당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청와대는 관저 가족 식사 등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비용을 매달 문 대통령의 급여에서 공제하고 있다. 대통령과 가족의 식비·생필품·의복비 등을 대통령 개인에게 청구하는 미국 백악관 시스템이 청와대에도 들어왔다.

이런 가운데 문 대통령이 최근 임명한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이른바 뇌물성 외유 등 각종 논란은 많은 사람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고 있다.

"'심사하는 기업 돈으로 해외 출장 가서 밥 먹고, 이것이 정당합니까'라고 피감기관을 호통치던 것이 귀에 생생합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글자 그대로 내로남불입니다." 김 원장을 기억하는 정부기관 관계자는 식사 자리에서 혀를 내둘렀다.

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태가 터진 직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순실에 대해 경계의 담장을 높이지 못했다"고 고백했었다. 문재인 정부는 철옹성 같은 지지율 고공행진을 바탕으로 현 정부의 인사는 모두 정의라고 판단하며 부패에 대한 경계의 담을 무너뜨려 버린 것일까?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아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지 못한다.' 김기식 원장 사태를 바라보면서 기자는 이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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