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과 음악, 외견상 '달콤한 조합'처럼 보인다. 여기에 '생계'가 대입되는 순간 환상은 여지없이 깨진다. 생계와 예술은 양립하기 어렵다. 여기에 '전원생활'이라는 전제까지 더해지면 실현가능성은 더욱 낮아진다.
이번에 소개할 3인의 대중예술인은 이 희박한 가능성을 뚫은 사람들이다. 전원생활을 하며, 음악을 즐기고, 거기에 봉사도 적극적이다. 민요가수, 통기타 가수, 색소폰 연주자로 장르도 다양하고 경산, 영천, 청송 등 거주지역도 다르다. 전원에서 자신의 음악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3인의 전원 예술인을 만나보았다.
◆청송 색소폰 연주인 스티브 민
청송 안덕면에서 사과 과수원 2만3천㎡(7천 평)를 가꾸며 분신인 색소폰에 열중하고 있는 팜(Farm) 엔터테이너다.
자신을 '논두렁 음악인'으로 소개하는 민 씨에겐 한때 도박에 빠져 암흑가를 헤맸던 나쁜 추억이 있다. 그런데 이 흑역사가 유일하게 빛을 발하는 곳이 있다. 청송감호소다.
감호소 교화 프로그램에 참가해서 도박 얘기를 들려주면 재소자들이 동질감(?)을 느낀다고 한다.
민 씨의 음악 출발은 '에이스'라는 청송지역 밴드였다. 여기서 색소폰 주자로 활동하다 얼마 전 솔로로 전향했다. 최근까지 삼자현휴게소에서 결식아동돕기 자선 공연을 벌였다. 현재는 성덕댐(청송 소재) 수달캠프장을 군에서 위탁받아 운영하며 캠프장에서 가끔씩 공연을 하고 있다. 아직 총각인 덕에 음악, 전원생활과 음악이 유지되고 있지만 이 구도가 깨지는 상황(?)을 언제든지 환영한다고.
◆영천 민요가수 정진아 씨
명함에 적힌 정진아 씨의 정식 직함은 '1급 노래강사'. 경로당, 치매센터, 복지관을 돌며 주로 어르신들을 상대로 공연을 펼친다. 음반을 2집까지 낸 기성 가수이고 예술연예인총연합회 회원이기도 하다. 무대에서 정 씨의 공연은 민요, 가요, 전통춤을 오가며 팔색조처럼 펼쳐진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에겐 타령조, 도회지 경로당에서는 가요, 흥이 잔뜩 오른 무대에서는 장구춤을 추며 부위기를 띄운다.
공연이 없는 날엔 자신의 텃밭으로 향한다. 661㎡(200평) 남짓한 채소밭에선 가족의 일용할 모든 채소가 조달된다. 아침 한나절 호미질을 하며 마음밭을 갈고, 잡초를 뽑으며 상념을 털어낸다. 인터뷰 끝에 아픈 상처를 어렵게 꺼내 놓았다. "오래 전에 9살된 아이를 사고로 떠나보냈어요. 그때 저도 같이 없어졌던 거죠. 무대에서 유일하게 위안을 얻어요. 그 아이가 항상 같이 있음을 느낍니다."
◆통기타 맨 기획사 대표 경산 박경진 씨
"집 근처에 있는 6천600㎡(2천여 평) 과수원이 내 음악의 자양(滋養)이에요. 포도, 자두, 복숭아를 따고 오골계를 키우며 많은 활력과 위안을 얻죠."
환갑 나이인 박 씨는 찢어진 청바지에 통기타를 메고 다닐 정도로 젊은 영혼을 유지하고 있었다. 박 씨는 현재 영천에서 작은 공연기획사를 운영하고 있다. 한때 정치 광고까지 손을 댔지만 지금은 순수 공연에만 집중하고 있다. 3년째 초등학교 방과후 교실에서 기타 지도를 하는 현역.
지역 요양원에서 연락이 오면 언제든지 기타를 메고 뛰어나가 1, 2시간 신나게 놀고 온다. 10여 년 전 사비를 들여 진행한 '하양읍민을 위한 음악회'는 경산의 첫 주민잔치로 알려져 있다.
그녀에게 음악은 '젊음의 코드'이자 '전원의 선율'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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