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 숱한 화제 감동 남겨
판문점 선언 성과 北美 회담에 달려
일방적 감격 단선적 매도 하지 말고
북한의 행동 눈 크게 뜨고 지켜봐야
북한은 우리에게 이중적 존재이다. 적이면서 동포이고, 대결의 상대방이자 동반자이기도 하다. 헌법재판소의 의견처럼 "현 단계에서의 북한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임과 동시에 대남 적화 노선을 고수하면서 우리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획책하고 있는 반국가단체의 성격도 함께 가지고 있다". 북한을 다루기 어려운 것은 그 때문이다.
대립과 갈등을 유지하면서 화해와 협력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쉽지 않은 과제임은 남북 교류의 역사가 증명한다. 굵직한 것만 보아도 남북은 끊임없이 화해와 협력을 모색해 왔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2007년 10'4 공동선언 등이 그것이다. 2005년 9'19 공동성명도 빼놓을 수 없다. 북한 핵 문제를 다룬 6자 회담 후 '모든 핵무기를 폐기한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경과는 아는 바대로이다. 선언은 선언으로 끝나고, 합의는 휴짓조각이 되었다. 이제는 스스로 핵 보유국임을 천명하는 북한을 상대해야 한다. 더 어려운 상황이다. 남북 관계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북한 핵 문제는 '우리 민족끼리' 풀 수 있는 차원을 넘는다.
"한 마리 제비가 왔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남북 관계만큼 이 말이 들어맞는 경우가 없다. 이번 판문점 정상회담은 숱한 화제와 함께 감격과 감동을 남겼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남북 간 합의 때마다 우리 국민들은 같은 느낌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당장 한반도에 봄이 온 것처럼 들뜨곤 했다. 통일이 되거나 적어도 남북한 주민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세상이 곧 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곤 했다.
이번에는 다를까. 진심으로 다르길 바란다. 객관적 조건도 이전과는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북한 지도자로는 최초로 남한 지역에 발을 디뎠다. 녹화되고 정제된 모습만 보여주던 북한 지도자들과 달리 김 위원장은 그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남한 사람들 앞에서 북한의 열악한 실상을 스스럼없이 고백했다. 연출이라면 고도의 연출이다. 부인까지 남한 언론에 여과 없이 노출시킨 것은 북한의 목표가 정상국가화 전략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남북 정상회담이 미국과의 회담으로 가는 징검다리라는 점이다. 이번에도 무슨 꿍꿍이가 있을 거라는 일각의 의구심은 당연하다. 여러 번 속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 의심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문제는 북한의 최종 상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축복, 축하 등의 의례적 치하를 건네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은 딴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에 이어 해리 해리스 미 태평양사령관을 주한 미국대사로 지명했다.
해리스 대사 지명자는 폼페이오, 볼턴과 함께 대표적인 대북 강경론자이다. 폼페이오에 이어 군인 출신이라는 점도 특이하다.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서둘러 외교안보 진용을 정비한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는 선명하다. 아예 대놓고 말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속이려 하지 않고 있고, 또 속지도 않을 것이다." 수틀리면 회담장을 박차고 나갈 수도 있다고 한다. 약속과 파기를 되풀이하던 공식이 이번에는 깨질 가능성도 있다. 판문점 선언의 최종적 성과는 북미 정상회담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성급한 결론을 경계해야 한다 해서 제비를 제비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언제 찬 바람이 불지 조심해야 하지만 제비가 봄을 알리는 신호인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역시 구체적 실천 방안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인정하다시피 악마는 디테일에 있고 선언은 실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아직은 북한의 이중적 존재가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니다. 교류 협력의 동반자로서 비중이 점점 커질 때 대결의 상대로서의 무게는 그에 따라 줄어들 것이다. 흥분을 누르고 판문점 선언적 약속이 구체적으로 실천될 수 있도록 감시하는 것이 정치권과 국민들의 일이다. 긍정적 측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스스로의 약속에 매일 수 있게 하는 방안이 무엇인지 함께 강구해야 한다. 일방적 감동도, 단선적 매도도 금물이다. 북한이 이중적 존재라는 인식은 두 눈을 크게 뜨고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노동일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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