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대표하는 시인 도연명, 왕유, 이백, 두보의 작품들과 이와 비슷한 이야기 혹은 정서를 갖고 있는 서양의 시를 교차로 읽으며, 중국인과 서양인의 정신세계, 종교, 그들이 각각 닿고자 하는 세상을 살펴보는 책이다.
◇ 귀거래사… 허위 벗고 자연질서로 복귀
지은이는 "이들 네 중국 시인의 작품은 각각 도가, 유교, 불교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반해 서양의 시는 기독교를 근간으로 한다." 며 "중국의 종교나 사상이 인간과 신, 우주를 동질적인 것으로 본다면, 기독교는 신과 인간의 차이에 주목한다"고 말한다. 세계관이 다른 만큼 시 작품 역시 미묘하게 다르게 형상화 된다는 것이다.
가령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와 예이츠의 '이니스 프리 호수섬'은 모두 자연을 동경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노래한 작품이지만 두 작품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귀거래사'를 보자.
'돌아가리라. 논밭에 잡초가 무성해지거늘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마음이 몸을 섬겼던 어제까지 그릇된 삶, 어찌 근심에 빠져 홀로 슬퍼만 하겠는가. 이미 지나간 것은 고칠 수가 없음을 깨달았고, 앞으로 올 일은 제대로 따를 만함을 알겠다. 헤매기는 하였지만, 먼 길은 아니었고, 이제 생각을 바로하니 어제의 잘못을 깨달았다. 배는 흔들흔들 가벼이 떠가고 바람은 살랑살랑 옷자락에 분다.'
이처럼 시인은 미련 없이 관직을 버리고 고향집으로 돌아간다.
'마침내 보이누나 저기 작은 내 집. 기쁜 가슴 울컥하여 마구 냅다 달렸더니, 심부름꾼 사내 녀석 좋아라 맞이하고, 아이들도 문 앞에서 제 아비를 기다린다. (중략) 어린 것들 손을 잡고 방 안에 들어가니, 이게 웬 술이런가 항아리에 그득하다. (중략) 남쪽 창에 몸 기대니 거리낄 것 전혀 없고, 무릎 겨우 들일 내 집 아늑하기 그지없다.' (하략)
고향(자연)으로 돌아온 시인은 참말로 행복하고 부러울 것도 꺼릴 것도 없다. 도연명에게 '귀거래'는 '마음에 맞지 않는 관직생활, 우주적 질서에 어울리지 않는 삶에서 벗어나 가족 이웃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 즉 우주적 질서에 순응하는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다. '귀거래'를 감행하면서 시인이 고려해야 할 것은 없다.

◇ 우주 질서의 회복은 오직 신의 은총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이니스 프리 호수섬(The lake isle of Innispree)' 역시 도연명의 '귀거래'와 마찬가지로 자연을 동경하는 마음을 담아낸 작품이다. 이 책은 그러나 "현실 속 시인은 호수 쪽으로 단 한 발짝도 다가가지 못하고 여전히 회색으로 포장된 도로에 서 있다."고 말한다.
'나 이제 일어나 가리라, 밤낮없이. 들리나니 기슭에 찰싹이는 나직한 호수 물소리. 마차를 타고 있을 때나 회색 포도를 걸을 때나, 마음 깊숙한 곳까지 내겐 그 소리가 들리네.' -이니스프리 호수 섬 3연-
지은이는 "시인(예이츠)은 전원생활을 간절히 동경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이루지 못하고 있다" 며 "귀거래사에서도 긴장과 갈등이 있지만 곧 어떤 뱡향으로든 결말이 나는데, '이니스프리 호수 섬'에서는 긴장상태가 유지된 채 끝을 맺는다. 이는 두 시인의 기질 차이 때문일 수도 있지만, 서구 문학과 중국문학의 본질적인 차이라고 볼 수 있다" 고 설명한다. 중국과 서양의 세계관 차이라는 것이다.
도가든 유교든 불교든 동양 종교에서는 구원의 열쇠를 인간이 지니고 있다고 본다. 반면, 기독교에서는 신과 인간의 구별이 극명하고,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지고지선하며 전지전능한 신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해야 하며, 구원을 결정하는 것은 오직 신의 영역이라고 본다.
이 책은 도연명이 돌아가고 싶은 고향으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달려갈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내리는 최종 판단에 대한 '불안'이나 '의심' 혹은 '죄의식'이 없기 때문이며, 예이츠가 '이니스프리의 호수 섬'에서 최종적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은 구원은 신의 영역이기 때문으로 설명한다.
◇ 이백, 다양한 사상으로 여러 빛깔 작품
이 책은 4명의 중국 대표시인들의 작품을 읽으면서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그들 각자가 갈망했던 세계, 더불어 그들 각자가 결과적으로 발을 들여 놓았거나 발을 빼지 못한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도연명이 살았던 시대는 중국이 여러 세력으로 분할되어 전쟁이 빈번했다. 도연명은 현실에서 유교적 가치를 실현하려하지 않았고, 자신의 본성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산수사랑 성향을 좇아 농사를 짓고 자연과 교류하며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고자 했다. 더 나아가 그는 우주적 섭리의 자연성에 순응하는 삶을 살고자 했다.
두보가 살았던 시대 역시 도연명의 시대적 상황과 비슷했다. 당 왕조는 쇠퇴기에 접어들고 있었고 고위관리들의 부정부패와 안녹산의 반란으로 국토는 황폐화되었고, 백성들은 전란으로 죽거나 겨우 목숨만 연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보는 현실문제와 대결하는 것을 피하지 않았다. 그는 유교적 가르침을 끝내 고수했으며, 나아가 서민들의 고통, 슬픔, 애절한 몸부림, 크나큰 절망과 가냘픈 희망 등 생생한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이백은 도연명이나 두보, 왕유처럼 일관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정신세계에는 대립적인 여러 사상이 공존했다. 도가적 경지에서 노래했는가하면, 강렬한 명예욕을 죽을 때까지 버리지 못하고 자신이 나라를 구할 탁월한 인재라는 믿음을 잃지 않았다. 그는 때때로 현실을 한탄했고, 유교적 가치를 비웃었다. 때로는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도약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경지는 도연명이나 왕유처럼 생활 속에 정착하지는 못했다.
왕유는 오랜 수행을 통해 흔한 자연풍경 속에서 지극한 아름다움과 불성의 청정함을 발견해낸 시인이었다. 그는 더할 나위없는 비참함 속에서도 절대 평등의 경지를 보았기에 두보나 이백처럼 현실비판적이거나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곧 현실도피는 아니었다.
왕유는 '모든 인간, 삼라만상이 부처요, 아무리 참혹한 일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전우주의 불성과 절대청정은 훼손될 수 없다'는 큰 진리로 직면한 문제를 풀고자 했다.
330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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