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많이 본 듯한 설정, 꽤나 익숙한 대사들이 눈과 귀를 자극한다. 뻔한 캐릭터와 뻔한 상황이 펼쳐지고 앞으로의 전개 또한 뻔히 눈앞에 그려진다. 그런데도 이 뻔한 드라마가 가진 중독성이 예사롭지 않다. 익숙해서 더 친근하고 무엇보다 재미있는 로맨틱 코미디 자체가 오랜만이라 반갑기도 하다. 이렇듯 tvN의 새 수목극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꽤 많이 본 듯한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인 설정을 가져와 효과적으로 시청자들을 홀린다. 성공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의 클리셰가 곳곳에 등장하지만 작가와 연출자가 그 쓰임새를 잘 알고 있는 듯 적절하게 사용해 기분 좋은 청량감을 안겨준다.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안착해 주목받고 있다.

#시청률-화제성 정상 차지하며 화려하게 론칭
지난 6일 방송된 '김비서가 왜 그럴까' 첫 회는 6.4%(닐슨코리아 수도권 유료가구 기준)의 높은 시청률로 동시간대 지상파까지 위협했다. 동시간대 정상을 차지한 SBS 수목극 '슈츠'의 시청률이 8.4%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비지상파에서 방송된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첫 회 시청률이 상당히 고무적인 기록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드라마의 전국 기준 시청률 역시 5.8%다. 비지상파 드라마 첫 회 기록으로는 상당히 높은 수치다. 2회 차에서 소폭의 드롭률을 보였지만 5%대 성적을 유지했다.
'체감시청률'이라고 부를 수 있는 화제성 역시 최정상급이었다. 굿데이터 코퍼레이션의 화제성 지수 조사에 따르면,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6월 2주 드라마 부문 화제성 지수 순위 1위에 올랐다. 드라마 부문 출연자 화제성 지수 조사에서도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주연배우 박서준과 박민영이 각각 1, 2위를 나눠가졌다. 무엇보다 방영 후 관련기사 댓글창이나 SNS 등에 이 드라마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이 크게 일어나면서 안정적인 순항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경쾌한 전개와 매력적인 캐릭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동명 웹툰을 드라마화한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재벌그룹의 젊고 잘 생긴 부회장과 여비서의 로맨스를 다룬다. 여기에다 초반부터 남녀 주인공의 갈등을 부각시켜 보는 이들의 궁금증을 자극하는 스킬을 사용한다. 내용은 이렇다. 9년 동안 근접 거리에서 자신을 보좌하던 비서 김미소(박민영 분)가 돌연 일을 그만두겠다고 하자 부회장 이영준(박서준 분)은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그리고 비서의 마음을 돌리게 위해 각종 회유책을 쓰기 시작한다. 파격적인 인사 및 연봉을 제시하다 김비서가 "평범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자 "내가 결혼해주지"라고 대놓고 직구를 날린다. 그러다 주위의 충고를 받아들여 천천히 연애부터 시작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요약하자면, 뛰어난 외모와 능력을 가진 극심한 나르시스트이자 독신주의자로 설정된 부회장 이영준이 오랜 시간 함께 한 여비서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생애 첫 연애를 하게 된다는 줄거리다.

#로맨틱 코미디의 성공조건 잘 갖춰
단번에 시선을 잡아 끌 수 있는 매력적인 남자주인공, 그리고 특히 여성 시청자들과의 사이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남자 시청자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할 수 있는 여자주인공 캐릭터. 이 두 가지는 로맨틱 코미디의 성공에 있어 절대적인 요소다. 두 캐릭터의 매력이 어느 한 쪽이라도 받쳐주지 못한다면 극 전체의 밸런스는 깨지기 마련이다. 여기서 굳이 어느 한 쪽에 비중을 더 두자면 단연 남자 주인공 캐릭터다. 남자 주인공의 매력을 극대화해야 드라마의 성공확률도 높아진다. '온 에어' '시크릿 가든' '신사의 품격' '상속자들' '태양의 후예' '도깨비' 등 스타작가 김은숙의 작품을 되새겨보면 이해가 쉬워진다. '시크릿 가든'의 현빈, '태양의 후예'에서는 송중기를, '도깨비'로 공유를 '톱 오브 톱 스타'로 끌어올린 과정을 떠올리면 된다. 남녀 주인공 캐릭터의 조화에 집중하되 남자 주인공 캐릭터의 매력을 최대치로 끌어내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방식이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이 공식을 충실하게 따른다. 박서준이 연기하는 재벌그룹 부회장 이영준은 자신의 외모와 능력에 대한 자부심이 커 스스로를 두고 "누구 주긴 너무 아깝다"고 말하는 나르시시스트다. 부하직원들이나 그 외 지인들에게도 자상한 인물은 아니지만 비서 김미소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조금씩 태도를 바꿔나간다. 자기애로 똘똘 뭉쳐 무심하고 퉁명스러운 톤으로 던지는 대사, 그러면서도 은근히 사랑하는 여자를 챙기는 면모. '시크릿 가든'의 현빈이 보여준 김주원 캐릭터가 딱 떠오른다. 물론, 특정 캐릭터가 떠오른다는 차원에서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클리셰라고 부정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굳이 클리셰를 피해가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면에 배치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한다.

박민영이 연기하고 있는 비서 김미소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다. 가정형편 때문에 개인 시간 한번 마음껏 쓰지 못한 채 까다로운 부회장의 비서 일을 9년이나 해낸 '똑순이', '마이웨이'를 걷겠다며 퇴사 선언한 후 남자로 다가오는 부회장을 향해 서서히 마음을 여는 인물. 흔해빠진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인 여자주인공 설정을 대놓고 가져왔다.
이런 경우 캐스팅된 배우들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데,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주연배우 박서준과 박민영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캐릭터 설정을 맞춤옷 입은 듯 적절히 소화해낸다. 능청스럽게 코믹연기를 펼치다 각 잡고 멋진 포즈를 잡아주는 박서준은 로맨틱 코미디에 딱 떨어지는 남자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박민영은 '성균관 스캔들' 이후 최고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본인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캐릭터를 만나 매력발산 중이다. 남녀 주인공 캐릭터가 잘 만들어졌으니, 이 드라마가 로맨틱 코미디 장르라는 사실을 상기할 때 약 70% 이상은 완성된 것이나 다름없다.
남은 건 주인공 캐릭터들이 마음껏 뛰어 놀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훔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장치다. 이 시점에서 줄거리는 적당한 설득력만 갖추면 그걸로 족하다. 어차피 처음부터 결말이 눈에 보이는 드라마라 결말의 방향 등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다양한 볼거리와 호기심과 긴장감을 유발하는 갈등, 그리고 웃음을 끌어내는 감초 캐릭터 등 매회 적시적소에 사용할 소품들을 적절히 사용해줘야 효과를 볼 수 있다. 이 역시 기존 유사 장르의 클리셰라고 할 수 있지만 활용하는 이의 손맛에 따라 완성도는 현저히 달라진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황보라와 이영옥 등 극중 그룹 부회장 부속실 직원들을 감초 캐릭터로 내세워 웃음을 주고, 이태환을 박서준의 극중 형제 캐릭터로 설정해 남녀 주인공 사이에서 삼각 갈등 구도를 만들어낸다. 장르의 성공을 위한 기본요소를 공식에 따라 충실히 구성해놨고, 제 몫을 할 수 있도록 배치까지 끝낸 상태다. 장르의 기본을 응용해 꽤 괜찮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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