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북문화-날 보러 와요]세계탈박물관 '방상시탈'  

하회마을 내 세계탈박물관 방상시탈
악귀 몰아내고 저승길로 안내하는 역할

세계탈박물관 전시실을 관람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세계탈박물관 전시실을 관람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인류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생명체나 자연재해, 현상 등을 맞닥뜨렸을 때 주로 두 가지 방법을 썼다. 하나는 '까짓것, 무찌르자'였고, 또 하나는 '어르고 달래 사이좋게 지내자'였다. 예를 들어 뱀을 두려워하던 부족은 뱀 형상을 만들고는 밟고 때리고 부수는 연습을 했고, 감당이 안 된다 싶을 때는 형상 앞에서 평화를 기원했다. 심지어 '뱀님'이 우리 부족의 수호신이니 해마다 한 명 정도는 뱀님께 바쳤다. 지금에선 이해하기 힘든 헌신적 합리화의 증거지만 엄연히 인류사의 한 페이지에 적혀 있다.

'방상시탈'이란 것도 태생이 그랬다. 죽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죽음'이란 애초에 실랑이할 수 있는 뭔가가 아니었다. 오로지 '가시는 길에 악귀가 안 붙도록 제발 좀 잘 봐주십사 굽신굽신'이라는 메시지를 탈(Mask)에 씌워야 했다.

방상시(方相氏), '방상'이라는 성씨인가 싶었더니 국립민속박물관은 '방상시'를 직무에 대한 명칭으로 설명했다. 그러면서 '제멋대로인 얼굴을 한 사람'으로 풀이했다.

이름의 유래를 김동표 세계탈박물관 관장에게 물었다. 일반적인 탈 이름에 붙는 'OO시'의 하나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계탈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탈은 엄밀히 말해 방상시탈의 일종인 '기(倛)'라고 했다. 귀신 쫓는 의식에 쓰인 탈을 '기(倛)'라 부른 기록이 있는데 탈전문가들은 눈이 두 개 달린 것을 '기', 네 개 달린 것을 '방상시'라 한다.

악귀를 쫓는 역할은 같으나 '기'는 서민층에, '방상시'는 사회적 지위가 높은 집안에서 쓰였을 거라 추정한다고 했다.

퓨전 사극을 통해 역사를 배운다는 비판도 있지만 2016년 SBS에서 방영된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에 '나례(儺禮)'라는 궁중 의식이 소개된 적이 있다. 나례는 묵은 해의 잡귀를 몰아내던 의식이었는데 여기에 방상시탈이 등장한다.

방상시탈의 일종인 기(倛). 탈의 머리 위쪽에 고리로 걸 수 있도록 돼 있다.
방상시탈의 일종인 기(倛). 탈의 머리 위쪽에 고리로 걸 수 있도록 돼 있다.

세계탈박물관에 전시된 '기(倛)'는 사람이 얼굴에 쓰기는커녕 수레에 실렸을 만큼 크기가 큰 탈, 이라기보다 설치물에 가깝다.

방상시탈은 장례식에서 짧은 시간 등장하지만 중요도가 높았다. 죽은 이의 저승길 1차 관문인 무덤까지의 보디가드다. 무덤까지 쫓아오는 악귀를 쫓는 게 임무다. 임무 완수 후 무덤 인근에서 산화한다. 스스로가 죽음으로 죽은 이가 가는 저승길을 편하게 열어준다.

'재가 되어가리'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책무를 다 하고 자폭하는 특수요원인 양. 남아 있는 방상시탈이 많지 않은 게 당연했다.

남아 있는 것들은 뭘까. 실전용이 아니었거나 붙박이로 재활용되다 살아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김동표 관장은 "살아남은 것들은 제각기 사연이 있겠지만 상여에 고정으로 붙여둔 채 태우지 않았던 것들이 살아남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라고 했다.

수많은 방상시탈이 제작됐으나 곧 태워질 운명이었기에 굳이 나무로 튼튼하게 만들 이유는 없었다. 더구나 실전에 쓰였음에도, 예술적 가치가 높아 불타지 않았던 방상시탈은 악귀가 붙었을지 모른다는 오랜 찜찜함을 이겨내기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래서 실전용 방상시탈 대부분은 예술적 가치, 심미적 가치와 거리가 멀었고 짚으로 간편하게 만들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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