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흙과 놀며 사발 빚기…마음의 힐링 절로 돼요"

향산도예 수제자들은 매주 수, 토, 일요일 공방에 모여 사발, 다관, 접시 등 도자기를 빚고 있다. 수제자들은
향산도예 수제자들은 매주 수, 토, 일요일 공방에 모여 사발, 다관, 접시 등 도자기를 빚고 있다. 수제자들은 "도자기를 만드는 즐거움은 물론 마음의 힐링도 되어 정말 기쁘다"고 했다. 김동석 기자

사람들은 왜 도자기를 배울까. 도공이 되고 싶어서? 취미생활을 위해서? 도자기를 빚는다는 것은 흙을 만지는 행위다. 흙은 자연에서 왔고 인간도 자연에서 왔다. 인간과 흙은 결국 자연의 산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흙에서 힐링을 느끼기도 하고 즐거움을 찾는지도 모른다. 대구 도동측백수림 맞은 편에 위치한 향산도예에는 도자기를 배우려는 수제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교사 출신인 서규철(73) 선생이 도예기술을 익혀 12년째 전수해주기 때문이다. 흙과 유약을 자체 개발해 만든 투박하고 자연스러운 사발 작품이 백미다. 현재 수제자는 26명으로 매주 수, 토, 일요일 공방을 찾아 도자기 빚기에 열공이다. 그들은 흙과 함께 놀면서 비움의 철학을 배우고 있다.

수제자가 사발에 인화문을 새기고 있다.
수제자가 사발에 인화문을 새기고 있다.

◆사발, 접시, 컵, 다관 빚기 후끈
29일 향산도예에 도자기를 배우는 수제자 10여 명이 모였다. 각자 흙을 만지는 손길은 진지하기만 하다. 널다란 판자 주위에 앉은 수제자들은 흙으로 접시, 꽃병, 수반 등을 만들고 있다. 접시는 반죽된 흙을 평평하게 다지고 나뭇잎 모양으로 잘라냈다. 접시 곳곳에 각종 문양도 새겼다. 꽃병은 가늘게 만든 흙 코일

수제자들이 물레 위에 흙을 빚으며 사발, 컵 성형을 하고 있다.
수제자들이 물레 위에 흙을 빚으며 사발, 컵 성형을 하고 있다.

을 하나씩 쌓으며 꽃병 형태를 갖춰갔다. 쌓은 흙 코일을 손으로 살짝 어개며 매끄럽게 했다. 마지막에는 흙을 돌돌 감아 꽃대 지지대를 만들어 붙였다. 작업장 가장자리에는 전기물레가 쉼없이 돌아가고 있다. 수제자들은 적당한 크기의 흙덩이를 물레 위에 놓고 원뿔 모양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사발을 빚었다. 돌아가는 물레의 원뿔 흙 중앙에 엄지손가락을 꽂고 흙을 밀쳐냈다. 양 손으로 사발 안쪽과 바깥쪽에 적당한 힘의 균형을 유지하며 정갈한 작업을 했다. 그리고는 사발 굽을 빚고 실을 이용해 분리시키니 온전한 사발 성형이 나왔다.

◆도자기 배우는 수제자들 부푼 꿈
중국어 강사인 송윤미(44) 씨는 10년째 도자기를 배우고 있다. 전국차인엽합회 주최 '올해의 명다기' 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주로 사발, 다관, 접시를 만든다. 도자기를 빚으면 힐링이 돼 좋다고 했다. 작품 도자기 공방 운영이 목표다. 영어학원장인 고경옥(55) 씨는 5년째 흙을 빚고 있다. 한국사발학회 주최 찻사발 공모대전에서 동상을 받기도 했다. 흙이 좋아 집에 전기물레도 갖췄다. 차도 마시고 도자기도 만들고 관광객 숙소도 제공하는 다용도 공방을 계획하고 있다. 프로농구 선수 출신인 조상하(53) 씨는 중학교 체육 교사, 유치원 도자기 체험교실에 나가고 있다. 도자기 입문 5년차로 다관, 접시를 배우고 있다. 결혼 후 손이 자주 붓고 했는데 흙을 만지면서 깨끗하게 나았다고 했다. 수제자 모임 회장인 김월선(67) 씨는 문경찻사발축제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잔, 다관, 생활도자기를 주로 빚고 있다. 자신의 마음이 담긴 도자기를 빚어 선물하는 즐거움이 쏠쏠하다고 했다.

◆사발은 만드는 것 아닌 태어나는 것
사발은 제일 만들기 쉬우면서도 가장 어렵다고 한다. 사발은 오랜 세월 동안 밥과 찬을 담는 용기로 우리 조상들과 함께 해온 그릇이다. 그래서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는 있지만 볼품 없는 그릇에 멋을 내야하는 무기교의 기교 때문에 가장 만들기 어려운 것도 사발이다. 모든 생명은 흙에서 태어나고 사발도 흙에서부터 출발한다. 사발은 흙맛뿐만 아니라 불맛의 매력이 함께 있다. 흙의 순환고리에서 보면 시작이고 무수한 혼들이 녹아 있는 경외로움이 있다. 장작가마에서 불이 어떻게 휘감느냐에 따라 사발의 질감과 색감이 달라지는 오묘함이 있다. 사발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다고 한다. 남녀가 결혼해 아기가 탄생하듯 말이다. 사발은 투박하면서 자연스러운 멋이 중요하다. 흙맛을 살린 사발은 사람의 가공을 최소화해야 한다. 사발에는 비움의 미학이 작동하고 있다. 사발은 마음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욕심과 이기심이 가득하면 원하는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

◆수제자 50명 배출, 공모전 그랜드슬램
향산도예에는 주부를 주축으로 26명이 도자기를 배우고 있다. 교육은 매주 수, 토, 일요일 있다. 수제자들은 강인한 정신이 없으면 입문이 불가능하다. 수제자를 받기 위해 철저한 흙 공부를 시키고 있다. 처음은 손으로 흙 만지는 작업부터 시작된다. 흙을 반죽하면서 흙의 물성을 파악한다. 흙을 비벼 동그란 흙 코일 만들기, 흙판을 두들겨 납작하게 만들기, 손으로 여러가지 모양 만들기 등 기초를 배운다. 6개월간 기초를 닦은 후에 물레로 흙 빚기를 시작한다. 그렇게 연습해 10시간 동안 컵 200개를 성형하는 미션을 완수해야 정식 수제자가 된다. 수제자가 되기 위해선 1년 정도 걸린다. 11년 동안 수제자 50여 명을 배출했다. 영천, 함안, 서울 등지에서 공방을 차려 운영하는 수제자도 있다. 벽면에는 수제자들이 입상한 40여 개의 상장이 붙어있다. 수제자들은 전국 공모전에서 상을 휩쓸었다. 경남'문경'서울 등 전국 3대 찻사발 공모전 모두 대상을 받아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김동석 기자 dotory1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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