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법관들의 해외 공관 파견을 늘리기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김기춘 비서실장과 이정현 의원까지 접촉해 청탁하려 한 정황이 확인됐다.
양승태 사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낸 소송의 결론을 박근혜 정부 내내 미룬 데는 판사들의 외국 파견 자리를 늘리는 등 법원행정처 조직 내부의 '복지'를 증진하려는 계획이 크게 작용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법원행정처가 일선 재판에 개입하려는 부당한 시도가 비단 상고법원 도입이라는 정책적 목적에서만 기획된 게 아니라 소수 엘리트 법관 조직인 법원행정처의 이익을 좇아 진행됐음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검찰의 수사 추이가 주목된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신봉수 부장검사)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PC 하드디스크와 USB(이동식저장장치)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오스트리아 법관 파견 추진 대책' 등 해외 파견지 확보 방안을 담은 문건을 다수 확보했다.
2012년부터 작성된 이들 문건에는 "2010년 중단된 주미 대사관, 주오스트리아 대사관 파견을 되찾아야 한다"는 내용이 주로 담겼다. 대법원은 외국 사법부와 교류 확대 등을 명목으로 2006년 미국·오스트리아 대사관에 판사를 보내기 시작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파견이 끊긴 상태였다.
법원행정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을 본격 추진하기 전인 이 시기에 법관 해외파견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특유의 정무적 구상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2013년 초 문건에는 "새 정부 수립 이후 추가 파견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같은 해 9월쯤 정리된 문건에는 "청와대 인사위위원회 접촉을 시도해야 한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 특히 이 문건에는 당시 청와대의 김기춘 비서실장과 이정현 홍보수석 등이 포함된 인사위의 인적 구성이 정리돼 있다.
법관을 외국에 파견하는 데 1차 협의 대상인 외교부를 건너뛰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청와대 핵심 인사들과 '직거래'를 시도한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실제로 법원행정처는 2013년 법관 외국파견을 재개시키는 데 성공했다. 전에 없던 주유엔(UN) 대표부와 주제네바 대표부에도 판사를 보내게 됐다.
주무부처인 외교부를 상대로도 법관 파견을 시도한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전범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지렛대로 삼아 외교부와 거래를 시도한 정황이다.
법원행정처가 2013년 9월 작성한 '강제노동자 판결 관련 외교부와의 관계'라는 문건에는 '판사들의 해외 공관 파견'과 '고위 법관의 외국 방문시 의전' 등을 대가로 기대하며 "외교부를 배려해 절차적 만족감을 주자"고 적은 대목이 나온다.
강제징용 관련 소송을 두고 '절차적 만족감'을 준다는 것은 외교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재판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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