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영어와 한국어, 두 개의 빙산

김희달 영어교수법(TESOL) 박사

김희달 영어교수법(TESOL) 박사
김희달 영어교수법(TESOL) 박사

영어는 언제 시작하는 게 좋은가요? 영어 교육 현장에서 이와 같은 질문을 참 많이 받는다. 앞으로 자녀가 한국에서 살 거라면, 한국어를 먼저 잘하게 하는 게 우선이다. 한국어를 위주로 하되, 영어를 함께 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요즘은 조기 영어 교육(5~7세)으로 한국어를 못하는 어린 학생들이 너무 많다. 이 학생들의 특징은 영어로도 한국어로도 어려운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표현도 잘 못한다. 게다가 학습을 통해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려고 하면 힘들어한다. 영어를 영어로만 배우려고 한 탓에 이해도 못하는 놀이와 쉬운 영어에만 길들어 있는 것이다.

대부분 학부모들은 원어민 교사들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쉽고 짧은 영어만 사용하도록 훈련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자녀의 진정한 실력을 모른다. 특히 생활만 함께 하는 부모들은 아이들의 영어를 직접 평가하지 못하므로, 기본 생활 영어만 잘해도 아이가 정말 영어를 원어민처럼 잘한다는 착각에 빠진다.

가장 심한 경우는, 이런 조기 영어 학습을 했는데, 영어도 못하고, 한국어도 못하는 경우다.

조금 더 나은 학생들은 영어를 어느 정도 읽을 줄 알고, 내용도 어느 정도 파악한다. 그러나, 영어로 뭘 어떻게 말하거나 글로 써야 할지를 모른다. 그동안의 조기 영어 붐은 표현력보다는 이해력과 재미에만 치중한 나머지, 학습은 대충대충, 아이와 부모의 눈만 높였고, 아이들의 영어 실력은 한계에 부딪힌다.

영어와 우리말을 한다면, 우리는 하나의 뇌로 두 개의 언어를 말하는 것이다. 캐나다의 응용언어학 교수 커민스는 이런 상태를 '바탕이 같은 두 개의 빙산'에 비유한다. 많은 응용언어학자들은 이 바탕이 되는 부분인 모국어의 성숙이 외국어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모국어가 성숙할수록, 그것이 이해의 바탕이 되어 영어도 더욱 빨리 성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어를 우리말보다 더 잘한다는 아이들에게 조금 어려운 개념을 설명해 주려고 하면, 대개는 힘들어한다. 아이들은 영어로도, 우리말로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반대로, 우리말 이해가 잘 되는 아이들은 일단 설명을 해주면 이해는 한다. 거기에다 영어 학습을 덧붙이면, 앞의 경우보다 더 빨리 발전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영어를 모국어처럼 배운 학생들은 대부분 영어를 잘하지만, 한국어는 못한다. 반대로, 성인으로 미국에서 수십 년간 살아도 발음도 안 고쳐지고, 영어를 못하는 교포들이 상당수 있다. 이들은 미국에서 영어를 배우려고, 거꾸로 한국산 영어 교재를 사거나, 한국어로 된 영어 학습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언어를 잘 이해하고 사용하려면, 근본적으로 이해가 쉽고, 빨리 전개할 수 있는 모국어를 바탕으로 하는 학습 방식이 답이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두 개의 빙산은 그저 산 너머 산이다.
조기 영어 교육을 해도 영어를 잘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어와 영어를 둘 다 잘하는 학생들이 매우 많다. 이 때문에 많은 학부모들과 어린 학생들이 조기 영어 열풍에 휩싸인다. 누구나 방법만 제대로 알면 전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기본 배움과 사고의 틀인 모국어 교육을 배제한 지나친 조기 영어 교육은 분명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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