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지상갤러리] 변상벽의 자웅장추

변상벽 작
변상벽 작 '자웅장추'(雌雄將雛)

<8>변상벽의 자웅장추(雌雄將雛)

변상벽(卞相璧)은 영조(英祖) 연간에 활동했던 화원(畫員)이다. 그는 영조의 어진(御眞)을 두 차례나 그렸고, 100여 점에 달하는 역대 명현(名賢)들의 초상을 그리며 '국수'(國手)로 불렸던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이다. 하지만 도화서 밖 민간에서 변상벽은 초상화보다 각종 동물들 그림으로 더욱 유명했다. 특히 고양이와 닭을 기막히게 잘 그려 '변고양이' 또는 '변닭'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였는데, 바로 이 작품이 '변닭'이 그린 닭 그림이다.

흑갈색 암탉이 병아리들을 거느리고 풀밭에서 모이를 찾고 있다. 어미 닭이 무슨 벌레 한 마리를 잡아 부리에 물고 꾹꾹거리며 새끼들을 불러 모으는 모양이다. 새끼들이 어미 곁으로 모여 들자 공연히 따라 나온 수탉이 덩달아 허세로 풀밭을 헤집고 쪼아대며 더 큰 소리를 내며 위세를 과시하려 든다. 병아리 한 마리가 그 소리에 속아 돌아서지만 곧 허세인 줄 알고 말똥히 바라보고만 있다.

수탉은 남빛으로 햇빛에 반사될 만큼 짙은 검은 색에 두 가닥 꼬리가 길게 나 있는 조선 고유종인데 맨드라미 꽃송이처럼 탐스러운 주먹 벼슬을 자랑한다. 허세를 부리느라 목털을 부풀리고 날개깃을 벌리니 더욱 위풍당당하다. 화창한 어느 봄날 풀밭에서 노닐고 있는 닭의 일가족을 표현한 그림이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강세황은 이런 제사를 붙여 놓았다.

"푸른 수탉과 누런 암탉이 7, 8마리 병아리를 거느렸다. 정교한 솜씨 신묘하니 옛사람도 미치지 못할 바이다."

후배 화가 마군후는 또 다음과 같은 제사를 달았다.

"흰털 검은 뼈로 홀로 무리 중에 우뚝하니, 기질은 비록 다르다 하나 다섯 가지 덕(德)이 남아 있다. 의가(醫家)에서 방법을 듣고 신묘한 약을 달여야겠는데, 아마 인삼 백출과 함께 해야 특별한 공훈을 세우겠지."

정교하게 묘사된 닭을 보며, 강세황은 화가의 붓 솜씨에 감동한 반면, 마군후는 삼계탕을 떠올린 모양이다. 농담이 좀 지나친 듯하지만, 같은 그림이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이처럼 달리 보일 수도 있다.

오세현(간송미술문화재단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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