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의 밀도/강민구 지음/청림출판 펴냄
매주 월·화요일이 되면 전국의 크고 작은 출판사에서 펴낸 신간 200여권이 문화부로 배달된다. 쪽수와 판형도 다양하지만 배달 목적은 단 하나, '날 좀 소개해주세요'이다. 그러나 지면에 소개되는 도서는 열 권 안팎이 고작이다.
이번 주도 간택(?)을 기다리는 책들을 정리하던 중 눈에 띄는 책이 손에 잡혔다. 지은이 이름이 낯익었다. '인생의 밀도'란 제하에 부제가 '날마다 비우고 단단하게 채우는 새로 고침의 힘'이었다. 지은이는 강민구.
'어랏! 혹시 내가 아는 사람?' 약력을 보니 맞다. 그렇다고 직접 만난 적은 없다. 기자와의 인연은 이렇다. 2014~2015년 그가 창원지방법원장이었던 시절, 딱딱하기만 했던 법원 인테리어를 그림과 서화로 장식, 세간에 관심을 모으면서 전화통화와 이메일로 그를 인터뷰해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후 카카오톡으로 그는 관심사나 강연내용 등을 기자에게 수시로 보내고 있다. 그렇다고 기자가 늘 답변을 하는 편은 아니다.
한때 대법관 물망에 올랐고 현재 서울고법 부장판사(전 대법원 법원도서관장)인 그가 쓴 '인생의 밀도'는 2017년 유튜브를 통한 화제의 명강 '혁신의 골목에 선 우리의 자세'를 엮은 것이다. 영상은 1시간이 넘는 분량이었음에도 조회 수는 금세 100만을 넘어 150만 건에 이르렀다. 책은 올 2월 출간됐지만 다시 '신간'이란 이름으로 배달됐다.
◆60대 법조인의 강연이 회자되는 이유
'현대 생활의 필수품인 스마트폰은 확장된 외뇌(外腦)다.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몸을 깨우는 새벽에, 스마트를 리부팅하면서 나의 뇌를 깨운다. 새로운 날의 시작을 맞는 나만의 의식이다.'(29쪽)
60대 현직 법조인의 유튜브 강연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뭘까? 적지 않은 나이의 남성이 낯선 디지털 툴을 능숙하게 다루고 시연하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각성의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으리라 짐작된다. 또 한 분야서 오래 천착한 전문가가 보여준 변화에 대한 자세와 인생론이 많은 호응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랬다. 그는 자기만의 의식을 통해 변화의 결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섬세함의 소유자다. 흔히 나이 들수록 생소함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걸 그는 해내고 있고 왜 그래야 하는 지를 자신의 삶에 비추어 답을 제시하고 있다.
◆깊은 통찰은 분야를 넘어 두루 적용
한국 사법정보화의 틀을 마련한 인물 중 한 사람이기도 한 저자는 경험에 비추어 정체되지 않는 인생과 변화를 맞이하는 자세에 대해 7가지로 요약된 개념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충고하고 있다.
첫째, 리부팅이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관성에 의해 살아지는 힘겨운 삶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일정한 순간마다 지나온 길을 복기하며 스스로를 정비할 리부팅의 순간이 필요하다. 리부팅을 않으면 삶에 찌꺼기가 쌓이고 그 찌꺼기는 삶 곳곳에 스며들어 인간을 마모시킨다.
둘째, IT감수성이다. 외부 변화에 반응하며 적극적인 소통이 필요하다. 급변하는 글로벌 IT환경을 유연하게 이용할 줄 안다면 어떤 변화도 맞닥뜨렸을 때 당당할 수 있다.
셋째, 적자생존(기록하는 사람이 살아남는다.)이다. 경험을 정리해 통찰하는 글쓰기 습관을 들인다. 넘치는 정보도 기록이라는 과정을 거쳐 정리해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
넷째, 생각근육이다. 외부 반응인 IT감수성과 내부 갈무리인 적자생존과 아울러 통찰의 힘을 배양한다. 생각근육은 다양한 독서와 꾸준한 글쓰기, 명상과 사고실험의 생활화, 용기 있는 질문 등으로 길러진다.
'생각의 근육은 육체의 근육과 같아 점점 단련이 될 수도 있고 퇴화될 수도 있다. 한 군데만 집중적으로 단련할 수 있고 여러 부분의 근육을 균형 있게 단련시킬 수도 있다'(75쪽)
수집과 사유를 통해 축적되는 단단한 생각의 힘은 웬만한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다섯째, 디지털 디톡스다. 사람은 저마다 내면에 두 마리의 개를 키운다. 바로 편견과 선입견이며 어떤 판단을 내릴 때 이 둘을 적용하곤 한다. 만약 매일 모든 디지털 기기를 꺼두고 명상에 잠기는 시간을 가진다면. 현대의 디지털 문명이 주는 피로감을 씻고 디지털 기기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여섯째, 적자생존(積者生存)은 자신이 노력을 통해 얻어낸 결과물을 나눔으로써 선을 쌓는 변주이다. '너 죽고 나 살자'가 아닌 '너도 살고 나도 살자'는 삶의 블루오션인 '적선'인 셈이다.
마지막은 조각모음이다. 하루를 마감하기 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진다. 고요히 나를 돌아보고 하루의 오류를 찾아내고 여전히 빈 공간을 채움으로써 다가올 내일의 새벽을 준비하는 것이다.
◆논리와 설득의 만만찮은 내공
저자는 책을 통해 농밀한 인생의 밀도를 어떻게 축적하며 또 이를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를 경험과 많은 독서 분량으로 설득하고 있다. 글을 전개하는 논리 또한 적절한 인용과 경구를 사용함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주목을 이끌어 낸다.
간절한 공부와 치열한 성찰로 충실히 채워진 삶의 밀도. 그 밀도가 껍질을 비집고 나와 청자(聽者)의 심금을 울린다. 268쪽, 1만5천원
지은이 강민구
구미 출신으로 1988년 판사로 임명해 창원지방법원장, 부산지방법원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함께하는 법정' '손해배상 소송실무'(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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