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멜로드라마'라고 하면, 남녀 간 사랑과 갈등을 소재로 한 다분히 감상적이고 통속적인 극 정도로 이해한다. 용어를 '격정극'(激情劇)이라는 한자어로 옮기면 그 느낌이 더 강하게 와 닿는다. 하지만 원래는 그리스어의 멜로스(melos·음악)와 드라마(drama·극)의 합성어이다. 음악과 드라마가 결합하는 장르, 그것이 바로 '오페라'가 아닌가. 실제로 이탈리아 오페라를 대표하는 위대한 작곡가 베르디는 오페라 대신 '멜로드라마'라는 용어를 즐겨 썼다고 한다.
오페라는 장르적 특성상 문학적, 드라마적 요소가 강하다. 특히 그 작품이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며, 적절하게 허구적 인물과 내용이 더해질 때 스토리가 더욱 풍성하고 흥미진진해진다. 이제 곧 대구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오를 작품이자, '제16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 개막작으로 관심을 끌고 있는 베르디 중기 걸작 오페라 '돈 카를로'(Don Carlo)가 좋은 예이다.
'돈 카를로'는 16세기 스페인 궁정 실화를 중심에 두고 유럽 정치사를 담아낸 작품으로, 오페라를 이끌어가는 다섯 명의 주인공 중 왕 필리포 2세와 그 아들 카를로, 왕비 엘리자베타는 역사책에 나타나는 실존 인물이다.
필리포 2세(재위 1556∼1598)는 이름하여 '무적함대'를 앞세우고 지중해를 장악했던 스페인 최고 전성기의 강력한 국왕이다. 그가 18세에 첫 번째 부인에게서 얻은 아들이 카를로이며, 이후 정략결혼으로 맞은 세 번째 부인이 프랑스 왕가의 엘리자베타 공주이다.
카를로와 엘리자베타는 둘 다 1545년생으로 1568년 스물셋에 카를로가 죽고 이어서 엘리자베타도 죽는다. 여기까지는 사실이다. 엘리자베타와 카를로 사이에 혼담이 오갔던 것도 사실이지만, 결국은 아버지 필리포 2세와 혼인하게 된다.
오페라 '돈 카를로'가 그려낸 '드라마'에 따르면 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인을 두고 삼각관계를 이룬다. 여인과 아들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며, 또한 아들을 남몰래 사랑했던 왕의 정부 에볼리가 질투심에 불타 갈등을 고조시킨다. 아들은 또한 친구 로드리고와 뜻을 합쳐 아버지에게서 핍박받는 플랑드르를 구하고자 한다. 결국 아들의 거사는 실패로 끝난 채 반역죄로 다스려질 상황이다.
그렇다면 엘리자베타와 카를로는 정말 연인이었을까? 카를로는 매력적이고 낭만적인 왕자였으며, 종교적 박해를 받고 있던 플랑드르 지역 자유의 수호자로 떨쳐 일어섰던가? 전해오는 문헌들에 따르면 카를로는 외모에서부터 그다지 호감을 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또한 자유의 수호자이기는커녕 거만하고 잔인한 인물이라는 기록이 있다. 어쩌면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 더욱 극적일 지도 모르겠다. 오페라의 황제 베르디가 세상에 내놓은 대작 '돈 카를로'는 대중에게 인지도 높은 작품이 아니며, 규모가 크고 연주 시간도 길다. 그러나 개성 강한 주역들의 성격과 상황이 교묘하게 얽혀 사랑과 배신, 오해와 비극을 능숙하게 그려냄으로써 베르디 최고의 심리 걸작 오페라로 불리기도 한다.
대구오페라하우스는 이번 축제의 첫 무대로 '돈 카를로'를 준비했다. 오페라를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선사할 것은 '사실'도 아니고 '드라마' 자체도 아니며 다만 '깊은 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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