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뇌졸중 앓으며 야구 유망주 아들 뒷바라지 하는 강은정 씨

2년 전 찾아온 뇌졸중, 왼쪽 팔다리 못 쓰고 안면 통증에 물도 못삼켜
재활치료는 뒷전, "야구부 아들 용품 한 번도 제 때 사 준 적 없어 마음 아파"

뇌졸중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한 강은정(가명·52) 씨는 야구 유망주인 아들 이화준(가명·15) 군을 뒷바라지 하려고 재활치료를 포기했다. 이 군도 어려운 형편 탓에 오른쪽 팔꿈치 부상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윤기 기자.
뇌졸중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한 강은정(가명·52) 씨는 야구 유망주인 아들 이화준(가명·15) 군을 뒷바라지 하려고 재활치료를 포기했다. 이 군도 어려운 형편 탓에 오른쪽 팔꿈치 부상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윤기 기자.

"아들이 야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제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상처를 주면 안 되겠지만 운동을 그만두면 어떻겠냐고 권하기도 하고, 저 혼자 울 때도 많아요."

뇌졸중 후유증으로 왼쪽 몸이 마비된 강은정(52·가명) 씨가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숙였다. 강 씨는 자신의 건강보다 중학교에서 야구선수로 뛰고 있는 아들을 생각하면 늘 마음이 아프다.

◆ 뇌졸중 후유증에도 치료비 아껴 아들 지원

강 씨는 남편의 지속적인 폭력과 알코올의존증 탓에 10년 전부터 집을 나와 아들 이화준(가명·15) 군과 함께 살고 있다. 음식점에서 일을 하면서 아들과 함께 살아가던 강 씨에게 2년 전 예고없는 불행이 찾아왔다.

갑자기 강 씨의 왼쪽 팔이 힘없이 축 처졌고, 얼굴에 감각이 사라지면서 한쪽으로 뒤틀렸다. 뇌출혈에 따른 뇌졸중이었다. 4차례에 걸친 시술에 이어 3개월 간 재활치료를 받았지만 심한 후유증으로 왼쪽 팔다리를 거의 움직이지 못한다. 목과 얼굴 왼쪽도 마비돼 물조차 삼키기도 불편하고, 안면을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에 시달린다.

꾸준한 재활치료가 반드시 필요한 질환이지만, 경제적인 부담 탓에 사실상 치료는 포기한 상태다. 통증이 심한 부위에만 파스를 붙이고, 근육이완제와 진통제 등 매일 17개나 되는 약을 삼키며 버틴다. 이마저도 한 달에 25만원 가까이 드는 약값 걱정에 건너뛰는 경우도 많다. 아들 화준 군이 등교하고 나면 늘 라면이나 미숫가루로 끼니를 때울 정도로 형편이 어렵다.

강 씨는 "사실 상 남편과 이혼한 상태이지만 법적으로 혼인 관계가 정리되지 않아 별다른 정부 지원을 받지 못했다. 올 초부터 겨우 기초생활수급비를 받게 됐지만 한 달 수입은 95만원 정도가 전부"라고 했다. 야구선수인 화준 군의 야구부 회비 60만원과 월세 15만원을 내고 나면 20만원 정도로 매달 생활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야구화나 배팅장갑 등 야구 용품 마련은 늘 걱정거리다. 야구화는 2~3개월마다 한번씩 닳아 없어지고, 야구 글러브도 매달 교환이 필요하다.

◆ 어머니 생각에 더욱 이 악물고 운동하는 아들

화준 군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촉망받는 야구 유망주다. 초등학교 2학년때 학교 동아리 활동으로 접한 야구에 재능을 보인 화준 군은 정식으로 야구부에 입단,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쑥쑥 커가는 기량만큼 성과도 내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에는 소속 야구부를 전국대회 결승으로 이끌었고 16개 중학교에서 입학 제의를 받았다. 보통 1학년 선수들은 벤치를 지키지만 중학교 입학 직후부터 주전투수로 나섰을 정도다.

그러나 화준 군도 부상에 발목잡힌 상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투수가 부족한 야구부 사정때문에 너무 무리하게 공을 던진 게 화근이었다. 오른쪽 팔꿈치 뼛조각으로 연골이 손상됐고, 팔꿈치를 모두 펼 수 없을 정도로 증상이 악화됐다.

결국 지난해 11월 600만원을 들여 뼛조각을 제거하고 연골 재생을 돕는 수술을 받았다. 두 달여간 재활치료가 필요했지만, 하루 10만원 씩 드는 치료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2주만에 서둘러 치료를 끝냈다.

서둘러 복귀한 탓인지 지금도 가끔 통증을 느낀다. 불편한 팔꿈치 대신 어깨나 허리를 더 쓰면서 근육이 뭉치고 아플 때도 많다. 연골재생을 돕는 수술은 큰 효과를 얻지 못해 고교 진학 후에 재수술이 필요하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화준 군은 아픈 어머니를 돕는다. 아침 일찍 일어나 유니폼을 직접 빨아 입고, 고된 훈련을 마치고 오후 10시가 넘어 귀가하면 마비된 어머니의 손을 주무를 정도로 효심이 깊다.

"어머니가 빨리 회복했으면 좋겠어요. 저도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끝까지 열심히 할 겁니다." 의젓하게 어머니 곁을 지키던 이 군이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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