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성장소설이다. 저자의 고향 앨라배마주 먼로빌의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시원한 영화관보다 법정에서 아빠의 변호를 지켜보는 것을 더 좋아했고 이야기 만들기를 즐겼던 어린 넬 하퍼 리는, 커서 법학대학에 입학했지만 결국은 소설가가 되었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스카웃이 지난날을 회상한다. 여섯 살 난 당찬 여자아이의 눈으로 본 세상이 세밀하고 재미있다.
1930년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 소설 속 마을 메이콤에서 양심 있는 지식인 아빠 에티커스는 변호사로 일한다. 백인여성을 도와주려다 겁탈하려 했다는 누명을 쓴 흑인 톰의 변론을 맡으면서 아빠는 마을에서 깜둥이를 변호한다는 비난 아닌 비난을 받는다. 이 일로 학교친구들과 싸움까지 한 스카웃은 아빠에게 하지 않으면 안되냐고 묻지만, 그러면 앞으로는 오빠랑 스카웃에게 더 이상은 올바른 말과 행동을 하라고 가르칠 수 없게 된다고 말한다.
아빠는 차이를 좁히기 위해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을 스카웃의 눈높이에서 말해준다. "누군가를 정말로 이해하기 위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것은 그 사람 몸속으로 들어가 그 사람이 되어서 걸어 다니는 거야"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백인여성이 가엽다는 생각에 아무런 대가 없이 도와주었다는 톰의 말에 자신들의 영역을 침해당한 듯 분노한 백인 배심원들은 유죄 평결을 내린다. 아빠는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위로하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이송 중이던 톰이 두려운 나머지 도망치다 총에 맞아 사망한다.
장난감 총 대신 진짜 총의 사용법을 궁금해 하는 오빠랑 스카웃에게 아빠는 당부한다. "세상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노래만 들려주는 앵무새를 죽이는 것은 죄란다." 당연한 얘기지만 총을 사용할 줄 안다고 해서 무고한 생명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아울러 정의로운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진실이 필요하다. 진실은 노래하는 새와 같이 세상을 향해 아무런 해코지도 하지 않는다. 그저 '참'으로 존재할 뿐이다.
세계 여러 나라의 정의의 여신 디케(Dike)상은 대부분 한손에는 저울, 다른 손에는 칼을 쥐고 눈가리개를 하고 있다. 그러나 원래의 디케는 눈을 가리지 않았다. 1494년 스위스 바젤에서 출간된 르네상스 최대의 베스트셀러 제바스티안 브란트의 『바보 배』에서 정의의 여신은 눈가리개가 씌워진다. 사소한 소송이 끊이지 않던 시기, 소송에서 이기길 바라던 사람들이 원했던 것은 디케가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것이었다. 사사로움에 휘둘리지 않고 공평함을 유지하기 위해 디케의 눈을 가렸다는 말과는 또, 무엇이 진실일까.
저자 하퍼 리(1926~2016)는 아흔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소설이 출간된 1960년에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한 권의 책으로 세상을 바꾼 사람이 되었다. 1931년부터 무려 20년을 끌었던 실재 스코츠보로 사건이 그녀에게 영감을 주었을 것이라는 말에는 이견이 없다. 살아생전에 어떤 매체와도 인터뷰를 거절했던 하퍼 리. 그녀는 떠났지만 차별과 편견에 맞선 책은 끊임없이 팔려 나가고 있으며, 지금도 여전히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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