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나도 '앉소남'이다

배성훈 디지털국장
배성훈 디지털국장

# 아내와 사랑 다툼 중인 영민은 소변을 보려다 좌변기 앞에서 깊은 고민에 빠진다. 서서 거사(?)를 마치려던 영민은 이내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며 계획을 바꾼다. 얌전히 앉아서 볼일을 마친 영민의 얼굴에는 묘한 미소가 번진다. 조정석이 출연한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서 갓 결혼한 영민은 '앉아서 소변을 보는 남자'(앉소남) 역할을 자연스럽게 소화한다.

# 잭 니컬슨이 주연한 영화 '어바웃 슈미트'에서 은퇴한 회사원 슈미트가 아내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다. "아내는 항상 나보고 좌변기에 앉아서 소변을 보라고 해. 내가 좌변기 좌석을 올리고 일을 본다고 해도 아내는 안 된대." 그래도 슈미트는 소변을 볼 때면 오만상을 쓰면서도 좌변기에 주저앉는다.

# 온 가족이 다 모인 추석 연휴가 끝난 뒤 매년 우리 집에서는 작은 소동이 벌어진다. 화장실 변기 주변에 어지러이 흘린 자국들 때문이다. 평소와 달리 많은 남자 식구들이 다녀간 화장실에는 수천 개의 오줌 방울이 좌변기 주변 바닥에 튀어 있다. 이 모든 방울의 청소는 당연히 나의 몫이다.

최근 어느 젊은 문화운동가가 '남자도 앉아서 소변 보기'를 권하는 글을 한 일간지에서 읽었다. 여성이 아닌 남성이 쓴 글이라 더욱 공감이 가는 글이었다. 이 운동가는 "더 청결한 삶의 방식이 있는데도 옛 습관을 고수하는 것이 진정 남자다운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앉소남'은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일본 남성의 40%가 좌변기에 앉아서 소변을 본다는 조사 결과가 있는가 하면 국내 남성의 47%가량은 가끔 혹은 좌변기에 앉아서 소변을 본다는 결과도 나왔다. 전 세계적으로도 '앉소남'은 확산 추세이다. 독일 유치원에서는 화장실 좌변기 문 앞에 'please sit down to pee!'(앉아서 소변 보세요)라는 교육용 캠페인 문구를 붙이고 남자아이들이 앉아서 소변을 보도록 가르친다. 2012년 대만 환경보호부는 각 지방정부에 '앉소남' 제안이 담긴 공고문을 공공화장실에 게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렇듯 남성이 앉아서 소변을 보는 일이 더 이상 생소한 일이 아닌데도 한국 남자들에게는 아직도 상당한 거부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고고하게 '서서 소변을 보는 남자'(서소남)들은 자신들이 위생이나 소음에 신경 쓰지 않는 '개 매너남'으로 몰리는 건 억울하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위생이다. 남성 1명당 하루 변기 밖으로 튀기는 미세한 오줌 방울만 하더라도 2천300방울(2006년 일본 생활용품업체 실험)이나 되고, 이런 오줌 방울은 바닥은 물론 수건과 칫솔 등을 오염시키고 고약한 냄새까지 동반한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는 공공화장실은 그렇다 쳐도 집 안 화장실 역시 그리 깨끗하지 않다는 의미다. 어머니나 아내의 수고를 덜어주고 화장실 청결을 유지하려면 앉아서 소변 보기를 거부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좌변기에 편안히 앉아 일을 봄으로써 위생은 물론 집 안 여자들 일을 돕고, 거기다 사색까지 곁들인다면 그야말로 '일석다조'가 아닐까. 오늘 당장 실천하기가 망설여지면 집 안 변기 주변을 한 번 살펴본 후 결정하면 어떨까. 참고로 나는 25년째 '앉소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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